스테이 아키텍츠는 공간의 형태보다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를 생각한다. 작은 상업공간에서 시작해 호미양양과 파크 오아시스처럼 규모와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동안에도 이들이 중요하게 여겨온 것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곳에서 만들어질 장면이었다. ‘STAY ON THE GROUND’라는 이름 역시 이러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건축가의 생각만을 앞세우기보다 주어진 장소와 현실의 조건을 살피고, 그 안에서 사람이 실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좋은 건축은 완성된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스테이 아키텍츠에게 건축은 사람의 경험과 시간이 쌓이며 비로소 각자의 기억 속에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Interviewee 홍정희 건축가, 고정석 디렉터
Editor 김도아

회사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이나 문장이 있잖아요. 스테이 아키텍츠는 사무소 이름과 함께 ‘STAY ON THE GROUND’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문장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홍정희 아무래도 ‘스테이’라는 이름이 지금은 흔해지기도 했고, 숙박을 의미하는 하나의 용어처럼 사용되기 시작했잖아요. 또 이름에 담은 의미가 단어만으로는 바로 전달되지 않아서, 그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는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stay’의 앞부분인 ‘sta-’에는 ‘서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establish나 stand 같은 단어에서도 볼 수 있는 어원이죠. 그래서 저희가 ‘STAY’라는 이름을 지은 데에는 물론 ‘머물다’, ‘머물고 싶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머물고 싶은 공간을 우리가 세우고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더 강했어요. ‘STAY ON THE GROUND’ 역시 결국 건축은 땅 위에 존재하니까, 그 위에 우리가 머물고 싶은 공간을 세운다는 의미로 만든 문장이에요. 그렇게 정한 뒤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스테이 아키텍츠의 홈페이지에는 ‘본질적 가치’와 ‘변화하는 가치’라는 표현도 등장해요. 오래 이어져온 가치와 동시대의 변화 사이에서 두 분은 어떤 균형을 찾고 있나요?
홍정희 저는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옛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문화적인 맥락 역시 전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미 전통이라는 것 안에 본질적인 가치와 변화하는 가치가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사람들이 경험해온 공간감이나 공간의 방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을 지키면서 동시대적인 감각을 더했을 때 오히려 더 깊은 공간적 경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고정석 저는 ‘시대적 경험’이라는 것도 계속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변화한다는 것을 기존의 것이 변질된다고 보기보다는, 계속 발전해나가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에요. 전통성이 시대에 따라 발전해온 모습과 지금의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새로운 건축의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태도가 최근 작업에서는 ‘건축과 브랜딩을 함께 다루는 방식’으로도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스테이 아키텍츠가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작업이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홍정희 저희가 강연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건축과 브랜딩을 함께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저희는 건물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브랜드나 성향이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업을 하고,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결국 건축에도 영향을 주니까요.
그래서 브랜딩부터 건축, 인테리어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숙박 시설은 브랜드의 특징을 공간 경험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유형이라 관심이 많고요. 꼭 숙박이 아니더라도 사업이나 브랜드를 건축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작업을 요즘 가장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Pick List
홍정희’s 여행 pick
– 리터닝 군산(Click!)
리터닝 군산 하나만 돋보인다기보다, 군산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공간, 도시의 언어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문화유산을 과하게 꾸미거나 관광상품처럼 소비하기보다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 고군산군도(Click!)
– 선유도(Click!)
군산이라는 도시를 건축이나 역사만으로 기억하지 않게 해주는 장소였어요. 도시 안의 문화유산과 동시대적인 공간, 그리고 선유도와 같은 자연이 함께 이어지면서 군산을 하나의 복합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서로 다른 성격의 장소들이 각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이 좋았어요.
고정석’s 여행 pick
– 나오시마(Click!)
문화와 예술의 밀도가 굉장히 높으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었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섬 전체의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 전체가 함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여러 건축가와 예술가가 참여하며 ‘예술의 섬’이라는 방향을 만들어왔죠.
– 이누지(Click!)
삼부이치 히로시가 오래된 제련소를 재생한 이누지마 세이렌쇼 미술관이 인상적이었어요. 기존의 거대한 부지와 건축물을 다루면서도 모든 부분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것처럼 굉장히 높은 밀도로 완성해 놓았어요. 공간의 구조도 한눈에 쉽게 읽히지 않아서 계속 돌아보며 평면과 공간의 관계를 이해하려 했는데, 쉽게 파악되지 않는 점이 더 큰 감동으로 남았어요.
– 다카마쓰(Click!)
다카마쓰에는 일본 근대건축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흥미롭게 볼 수 있어요. 나오시마와 주변 섬에서 현대 건축과 예술을 경험한 뒤 다카마쓰의 근대건축까지 이어서 보면 지역의 건축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요. 물론 우동도 빼놓을 수 없어요.
브랜드의 방향을 먼저 정한 뒤 건축으로 옮기는 것과, 반대로 건축에서 출발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은 꽤 다른 과정일 것 같아요.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무엇이 먼저 시작되나요?
홍정희 사실 브랜드와 건축을 동시에 시작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는 건축주가 오시면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실 건가요?”, “직접 계속 쓰실 건가요, 임대를 주실 건가요?”, “몇 년 뒤에 매도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같은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해요.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대지나 주변 맥락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질문일 수 있지만, 건축주가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지에 따라 건물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런 조건을 먼저 파악한 뒤 대지와 주변 맥락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건축을 생각하는 과정 안에는 이미 브랜드에 대한 고민이 함께 들어가 있는 거죠. 이후 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건축의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적인 브랜딩도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편이에요.
고정석 어떤 때는 대지의 형상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어떤 때는 건축주의 성격이나 태도에서 출발하기도 해요. 다만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저희는 건축뿐 아니라 사용 방식과 공간의 이름까지 동시에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프로젝트마다 자연스럽게 스테이 아키텍츠만의 결을 가진 이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홍정희 소장님은 건축을 중심으로, 고정석 소장님은 디렉터로서 인테리어에 조금 더 큰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요. 하나의 건물을 만들어갈 때 두 분이 가장 많이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반대로 의견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부분도 궁금해요.
고정석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역시 평면과 단면인 것 같아요. 결국 평면과 단면이 좋아야 건물의 쓰임도 좋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시공 중에도 더 좋은 방법이 보이면 계속 고민하고 수정하는 편이에요. 건축은 호흡이 굉장히 길잖아요. 3~4년씩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고요. 그 시간 동안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더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도 하고, 건축주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인테리어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요.
결국 처음 계획한 것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지, 더 좋은 방향이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바꿀 것인지를 두고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는 기존 계획을 지켜야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조금 더 품이 들더라도 바꾸는 게 맞다고 판단할 때가 있거든요. 서로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려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깃티 ⓒ스테이 아키텍츠
스테이 아키텍츠는 특히 호텔이나 숙박 시설을 작업할 때 건축과 인테리어뿐 아니라 브랜딩, 조명, 향까지 함께 다루고 있잖아요. 서로 다른 요소를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연결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홍정희 우선 사용자가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차이인 것 같아요. 사용자가 명확하다면 향이나 아트 피스처럼 그 사람이나 브랜드에 맞춘 요소를 직접 제작할 수도 있어요. 반대로 불특정한 일반 대중이 사용하거나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라면 조금 달라져요. 그럴 때는 특정한 향 같은 요소에 의존하기보다 촉감이나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공간의 감각을 충분히 채워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지 굉장히 많이 보고, 색채 계획 같은 부분도 더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재료와 질감, 빛과 그림자, 향처럼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주는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공간을 만들 때 굳이 하나를 가장 먼저 꼽는다면요.
홍정희 저는 아무래도 동선과 머무르는 방식인 것 같아요. 빛과 그림자, 재료와 질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동선이 먼저 정해져야 그 안에서 다른 요소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대로 재료나 빛을 먼저 정해놓고 동선과 머무르는 방식을 끼워 맞추면 오히려 한계가 생길 수도 있고요.
물론 실제로는 이 모든 요소를 동시에 고민해요. 다만 저희는 대지가 가진 맥락을 읽고 평면과 단면을 만드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쓰는 편이에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결국 평면과 단면이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에서 머무를지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고정석 이럴 때 보면 저희가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가 설계하면서 내부적으로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말이 ‘진입 여정’이에요. 스테이 아키텍츠는 시각적으로 강하게 튀는 건축을 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사용자가 공간에 다다르는 순간부터 목적한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는 그 ‘진입 여정’ 안에 동선뿐 아니라 빛과 그림자, 구조감이나 공간감 같은 요소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여정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재료의 질감이나 향, 조명뿐 아니라 소리나 자연 같은 감각적인 요소도 함께 고민해요. 예를 들어 호미양양은 진입 동선에 물을 두어 시각적인 경험뿐 아니라 물소리나 촉감처럼 여러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고, 깃티 역시 진입 과정에 물을 활용했어요. 울산 미오리 단독주택을 비롯한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고요. 결국 저희는 공간을 바라보는 것보다 그 안을 이동하며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이미 시간과 기억이 쌓인 건물을 다시 다루는 작업도 많이 해오셨죠. 리모델링에서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판단하는 일이 특히 중요할 것 같은데, 두 분만의 기준이 있나요?
홍정희 본의 아니게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비중이 조금 높은 편인데, 확실히 신축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신축이 더 좋아요. 그래도 리모델링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어요. 건축주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건물처럼 만들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 건물이 가진 흔적이나 시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는 그런 점이 오히려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과도 잘 맞는다고 봐요. 서로 다른 시대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 겹쳐 있다는 점에서 신축과는 다른 깊이의 경험을 줄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오래된 성당이 도서관이 되거나, 목욕탕이 전시 공간으로 바뀌는 것처럼 기존 공간의 기억을 가진 채 새로운 용도로 이어지는 건축에 특히 관심이 많아요. 저는 이런 작업을 ‘컨버전(conversion)’이라고 표현하는데, 제 논문도 이 주제로 썼어요. 리모델링 가운데서도 용도 변경을 통해 공간의 역할과 경험이 달라지는 작업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에요.
스테이 오피스 6층 ⓒ스테이 아키텍츠
기존 건물이 가진 시간과 성격을 존중한다는 점은 앞서 이야기한 전통이나 지역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반대로 그런 요소를 너무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요. 전통이나 지역성을 다룰 때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홍정희 아무래도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인 것 같아요. 저와 고정석 소장 모두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의도하지 않아도 프로젝트 안에서 드러날 때가 있거든요. 지금 저희가 있는 이 6층 공간도 방문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아시아적이네요”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처음부터 ‘전통 건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의 취향이나 뿌리가 자연스럽게 공간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반적인 지역성보다 한옥이나 전통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때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져요. 전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넓고 사람마다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니까요.
고정석 저희가 한옥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했지만 ‘전통성’을 가장 앞에 내세운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희는 한옥 전문 건축가라기보다 한옥을 경험해보고 그 안의 요소를 스테이 아키텍츠의 방식으로 해석해온 건축가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옥 자체를 저희의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고요.
홍정희 소여정도 비슷했어요. 기존 건물이 한국식과 일본식 건축 요소가 섞인 개량식 목조주택에 가까웠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전통 한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설계할 때 ‘애초에 전통 한옥이 아닌 건물에서 굳이 전통성을 찾아 다시 한옥처럼 만들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오히려 원래 여러 요소가 섞여 있던 건물이라면 그 성격을 인정하고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는 게 더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태생부터 전통 한옥이 아닌 건물을 억지로 한옥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건축가의 욕심일 수도 있다고 봤고요. 한국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섞은 게 아니라, 원래 그 건물이 가지고 있던 성격과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작업한 거예요.
소여정 ⓒ스테이 아키텍츠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 분의 작업에는 건축적인 판단뿐 아니라 각자의 취향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아요. 요즘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곧 한 사람이나 브랜드의 개성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두 분은 자기만의 취향을 어떻게 만들고, 또 유지하고 계신가요?
홍정희 저는 그게 취향의 ‘퀄리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기안84처럼 꼭 고급스러운 감도를 가져야만 자기만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이 사람은 일관되게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에게도 저희만의 감도가 있고, 더 높은 감도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브랜드나 공간을 배우기도 해요. 하지만 그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제 취향이 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자기 스타일이 확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시간을 빈틈없이 쓰는 친구도 있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친구도 있고, 하루 종일 만화책만 보는 친구도 있어요. 저는 그럴 때 “놀아도 괜찮고, 만화책만 봐도 괜찮다. 다만 좋아한다면 정말 깊게 좋아해라”라고 말해요. 좋아하는 작품의 계보를 줄줄 이야기할 수 있고 ‘이 친구는 정말 오타쿠구나’ 싶을 정도라면, 오히려 그게 그 사람만의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정석 얼마 전에 홍대에 갔다가 코스프레를 하는 친구들을 봤는데 존경심이 생겼어요. 예전 같았으면 저럴 시간에 다른 걸 하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큰 강점이 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들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좋아하는 일을 정말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저 정도로 깊이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관성 있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유행한다고 이것저것 선택하다 보면 오히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기 쉽거든요. 차라리 의도적으로라도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방향을 하나 정해두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빨간 신발이 좋다면 정말 계속 빨간 신발만 신는 거예요. 그런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 자체가 하나의 취향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취향과 작업 방식을 오랫동안 쌓아온 만큼, 외부의 평가를 통해 그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동안 받은 상 가운데 두 분에게 각각 가장 뜻깊었던 상을 하나씩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고정석 저는 호미양양으로 상을 받았을 때가 굉장히 뜻깊었던 것 같아요. 호미양양이 어떻게 보면 저희의 첫 번째 본격적인 신축 프로젝트였거든요. 그전에 양평에서 온실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가설건축물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실질적인 신축 프로젝트로 보면 호미양양이 처음이었고, 목구조 건축 역시 저희에게는 처음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프로젝트로 강원도 건축상 특별상을 받았어요. 처음 지원할 때만 해도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후보작 정도에만 올라가도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심사위원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상을 받게 됐고, 저희가 처음으로 상장뿐 아니라 트로피도 받아본 상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홍정희 저는 이번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정말 기대를 거의 안 하고 있었고, 사실 출품했다는 것도 조금 잊고 있었어요. 저희도 파크 오아시스와 같은 용도의 프로젝트를 이전에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건축물도 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대상이라고 연락이 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호미양양 ⓒ스테이 아키텍츠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서 좋은 평가도 받고, 스테이 아키텍츠만의 방식도 조금씩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영역까지 작업을 확장해보고 싶으신가요?
홍정희 상대적으로 많이 해보지 않은 분야라면 공공 프로젝트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안 해본 프로젝트에 대한 욕심이나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반대로 스테이 아키텍츠가 지금까지 잘해온 것을 더 확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숙박 시설도 계속 해보고 싶어요. 저희가 브랜드나 공간의 감각을 다루는 데 강점이 있고, 그런 이유로 숙박 프로젝트를 많이 해왔다면 언젠가는 정말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규모의 리조트도 설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고정석 저도 비슷해요. 우선 숙박 시설처럼 많은 사람이 실제로 자고 머물면서 오감을 통해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굉장히 즐거워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누구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접근해서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더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불특정 다수가 편하게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이 공간 참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쓰임이 좋은 공공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다만 저희가 현상설계를 거의 하지 않다 보니 현상설계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에요. 워낙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잖아요. 거기에 너무 많은 힘을 쏟다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오히려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커요.
두 분 모두 결국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이야기하셨네요. 그렇다면 스테이 아키텍츠가 생각하는 ‘좋은 공용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고정석 사실 저희가 최근 공공성을 가진 공간을 본격적으로 다뤄본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요. 저희가 4년 넘게 아이파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만들어온 여러 공간 언어가 최근 실제 아파트에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 단지 안에 만든 티하우스이자 야외 음악당 역할을 하는 공간이에요. 저희가 제안했던 여러 공간 가운데 하나를 실제로 구현해보자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설계까지 진행했어요. 얼마 전 준공 촬영을 하러 갔더니 단지 주민과 외부 사람들이 그곳에 자연스럽게 앉아 공간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가 있었고, 작은 공간이 사람들의 실제 사용을 통해 어떤 공공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프로젝트였어요.
홍정희 아파트 프로젝트에서는 상품성이 중요하다 보니 시각적인 화려함이 큰 요소가 되는데, 그런 방향은 저희가 원래 추구하는 태도와 조금 달라 늘 하나의 허들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의 방향이 조금씩 섞여갔고요. 준공 촬영을 하러 갔을 때 아침 일찍 사람들이 티하우스에 앉아 있거나 산책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머무는 모습을 봤어요. 시각적으로 무엇이 더 멋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실제 행동으로 그 공간을 선택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어요. ‘아, 이 공간이 정말 머물기 좋은 장소라는 걸 여기서 확인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뿌듯했어요.
고정석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좋은 공용 공간은 사람들에게 ‘여기는 편하게 머물러도 되는 곳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Pick List
홍정희’s 공간 pick
– 월드컵 공원(Click!)
– 난지한강공원(Click!)
날씨가 좋으면 의자를 챙겨서 그냥 앉아서 책도 보고, 음료도 마시고, 음악도 듣다가 와요. 물론 좋아하는 건축물이나 동네, 카페도 있지만 오랫동안 쉼을 주면서 동시에 영감을 주는 공간을 생각하면 자연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고정석’s 공간 pick
– 카페 마 MAA(Click!)
향신료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곳이라 직접 만든 콜라 같은 음료나 차이티, 향신료를 활용한 빵처럼 이곳만의 취향이 분명하게 느껴져요. 특히 음식의 맛과 향, 선곡하는 음악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 있어서 공간 전체가 하나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점이 좋아요. 건축적인 형태 자체보다 음식과 음악, 분위기, 그리고 동네의 맥락까지 여러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그 장소만의 인상을 만든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 잠깐의 야외 피크닉
저희는 차에 접이식 의자를 두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잠시 멈춰 자연을 즐겨요. 의자를 펴고 와인을 마시며, 우연히 바다에서 뛰노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본 적도 있어요. 건축물뿐 아니라 이렇게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풍경의 한 장면에서 더 큰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아요.
스테이 아키텍츠에게 공간의 가치는 완성된 형태나 이미지 안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슬로건인 ‘공간의 가치는 머무는 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라는 문장처럼, 좋은 공간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을 통해 비로소 각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다. 스테이 아키텍츠의 건축은 하나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좋은 건축’을 정의하기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좋은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데 가까워 보인다. 건축은 결국 사람이 머물면서 완성되고, 공간의 가치는 그 안에 쌓인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STAY ON THE GROUND’라는 이름 역시 그렇게 사람과 공간, 그리고 머무는 시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료제공 스테이 아키텍츠(https://www.stayarchitects.com)
글 김도아 에디터
* 별도 표기 외 모든 사진은 마실와이드에서 직접 촬영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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