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미학의 출처가 세계와 동떨어진 고상한 관념의 유희로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보이는 것 너머’는 언제나 ‘보이는 세계’와 밀착해 있다. 사회, 공동체, 몸, 감각이 다양한 심도에서, 그리고 긴밀하게 인간의 무의식, 관념, 초월의 인식의 형성과 전개에 관여한다. 추상미술은 ‘보이는 것을 부정하는 예술’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갇히지 않으려는 예술’이다. 지속적으로 우리를 옭아매는 세속의 한 가운데서 비롯되는 인식이 추상 미학의 더 절실한 요구가 되는 이유다. 모든 추상미술은 세계와 세계 너머 사이의 공간에서 진리와 선(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성취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추상미술의 한 감상법이 도출된다. 추상미술의 언어는 알파벳 형태로만 주어진다. 보이는 것은 인쇄된 글자의 이상한 형태들이다. 마치 신문을 거꾸로 든 것처럼 읽을 수 없다. 읽기 위해서는 신문을 뒤집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글자가 아니라 단어가 나타나고, 제대로 된 의미가 나타난다. 이 뒤집기가 추상의 감상을 추상의 창작만큼이나 흥미로운, 동시에 흥미를 넘어서는 도전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가 그런 경험을 탐사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일시: 2025년 6월 19일 ~ 9월 14일
– 장소: 서울대학교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