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마을 그리고 공간을 아우르며 과거와 현재를 엮어내는 건축가가 있다. 체코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XTOPIX architekti는 땅이 가진 ‘문제점’을 필두로 갈증을 해소해 나가는 팀이다. 땅이 가지고 있는 아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과 단점들을 앞세워 새로운 공간과 엮어내며 또 다른 특징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프로젝트와 땅의 연결, 땅과 시간의 연결, 관계의 연결이 장소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과정이라 믿는다. XTOPIX architekti는 어떻게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며 흐름을 엮어내고 있을까. 인터뷰를 따라 그 발자취를 쫒아가 보자.
Interviewee Pavel Buryška 건축가
Editor 박지성

XTOPIX architekti는 프라하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러 프로젝트에서 특정 도시나 마을, 장소가 가진 역사와 지역성을 세심하게 읽어내는 태도가 돋보여요. XTOPIX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건축적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Pavel Buryška 저희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관계없이 장소에 생긴 단절을 회복하고, 그 안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작은 마을의 광장부터 모더니즘 건축물의 재활성화, 역사 도시 보존 구역의 공공공간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건축과 도시를 세심하게 다루는 과정이 결국 그 장소의 문화적·사회적 환경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거든요. 유치원이나 학교, 문화·커뮤니티센터 같은 교육시설에 관심이 많은 것도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문화적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 저희에게 프로젝트의 범위는 단순히 대지 경계에서 끝나지 않아요. 땅을 이루고 있는 곳의 역사와 사회적·도시적 관계, 주변 경관까지 함께 살펴보거든요. 선 하나를 그리기 전에도 ‘왜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방식이 가장 적절한가’를 질문하죠. 하나의 건물을 설계하더라도 형태와 방향, 프로그램을 통해 주변을 활성화하고 지역 주민과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XTOPIX architekti를 대표하는 두 분은 도시와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여러 도시와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아오셨다고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은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어떻게 융화되나요?
Pavel Buryška 서로 다른 분야를 섞고 연결하는 태도는 XTOPIX를 이루는 ‘DNA’ 같은 거예요. 저희는 예술과 디자인을 건축, 도시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을 좋아해요. 프로젝트 안에 조각이나 벽화, 회화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을 함께 계획하고, 가능하다면 문화 기관의 프로그램이 공간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협업하기도 해요. 이런 방식은 프로젝트의 문화적 가능성을 넓히는 동시에 제한된 예산 내에서 새로운 재원과 지원을 끌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돼요.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했던 경험도 지금의 작업에 큰 영향을 줬어요. 다양한 도시를 경험하면서 1938년부터 1989년까지 역사적 단절을 겪은 체코의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됐죠. 체코는 여전히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트라우마를 겪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있거든요. 덕분에 해외에서 배운 경험을 체코의 현실에 맞게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프로젝트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요.
Marianske_square ⓒXTOPIX architekti
XTOPIX는 장소가 가진 이야기와 ‘genius loci’, 즉 장소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된 일을 한다고 소개하고 있어요. 처음 대상지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관찰하거나 질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Pavel Buryška 가장 먼저 장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펴봐요.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식과 속도, 보행 동선, 장소에 활기를 만드는 요소들을 관찰하죠. 그 지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상황이나 주민들이 문제라고 느끼는 지점에도 주목해요. 때로는 그런 문제가 오히려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가능성이 되기도 하거든요. Mariánské náměstí 광장 재생 프로젝트를 ‘문제’를 ‘가능성’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할 수 있겠네요.
프라하의 역사 중심부에 있는 이 광장에는 시청, 도서관, 시립 미술관 사이에 길이 약 120m, 폭 2m, 깊이 2m에 달하는, 좁고 깊은 도랑이 있었어요. 이 도랑은 기존 중세 도시를 철거하고 19세기 도시를 새롭게 조성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공간이었는데요.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사실상 공중화장실처럼 사용되고 있었어요.
저희는 지역 관계자들과 논의해 도랑을 넓히고, 새로운 요소를 더해 프라하 시립미술관과 연결되는 야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제안했어요. 프라하 시립미술관은 오랫동안 내부에 지나치게 폐쇄적인 공간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요.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전시를 공공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런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과거 매우 불쾌하고 접근하기 어려웠던 공간이 오늘날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는 활기찬 장소로서 그리고 프라하 역사보존지구의 새로운 문화적 목적지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앞서 말씀하신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장소인 셈이네요. 이처럼 역사적 맥락이 있는 땅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과 필요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답을 찾아나가는지 궁금해요.
Pavel Buryška 적절히 그 둘 사이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공감하는 태도와 적절한 용기, 조율 능력,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디테일을 읽는 감각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과감한 개입이 필요할 때 그것이 단순한 제스처인지, 아니면 장소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새로운 층위인지를 먼저 질문해요.
기존의 것과 새롭게 더하는 요소 사이의 균형은 프로젝트마다 달라요. 특히 역사적 장소에서는 인허가 과정에서 많은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 관계자와 충분히 대화하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해요. 저희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절대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유형의 건축가는 아니에요.
XTOPIX의 작업에서는 공공성, 공동체, 교육, 문화, 도시재생과 같은 주제가 자주 등장해요.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프로젝트에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Pavel Buryška 저희는 사회적 교류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나이와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조금 더 분명한 목적을 가진 프로젝트에 끌리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도 영향을 줬어요. 십 대 시절 고향에서 친구들과 스트리트 아트와 댄스 음악, 클럽 문화 등을 다루는 예술 크루를 운영했어요. 이후 건축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런 창작 활동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죠.
저희 세대의 젊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주변 환경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까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공통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약 15년 전부터 ‘Městské zásahy(Urban Interventions)’나 Pecha Kucha Night 같은 움직임이 확산하고, 건축 교육의 양상도 변화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더 강해졌어요.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저희가 선택한 방향이 창작의 에너지를 주는 동시에 사회에도 무언가를 돌려줄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도 생겼고요.
순서대로 1-2: Petrské předměstí, 3-5: Prague-Komořany, 6-8:KINONEKINO ⓒXTOPIX architekti
지금까지 진행한 작업 가운데 XTOPIX architekti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몇 가지 꼽는다면요?
Pavel Buryška Mariánské náměstí와 주변 지역 재생 프로젝트, Planá의 Petrské předměstí 재생 프로젝트, 문화센터 KINONEKINO, 그리고 Prague-Komořany의 새로운 초등학교를 꼽고 싶어요. 이 프로젝트들은 건축과 조경, 플레이스메이킹, 디자인, 예술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결합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일상의 작은 만남부터 지역 단위의 큰 행사까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했고, 각 장소만의 고유한 모티프를 찾아 디테일과 건축 요소에 반영했죠.
앞의 세 프로젝트는 문화유산 보호가 강하게 적용되는 역사적 도시에서 진행됐어요. 과정은 복잡하지만, 저희는 역사적 맥락 위에 새로운 건축적 층위를 더하는 일에서 큰 가치를 느끼는 편이에요.
반면 Komořany의 학교는 앞의 세 프로젝트와 달리 약 7,500명의 새로운 주민이 들어설 프라하 외곽의 개발 지역에 있어요. 따라서 학교뿐 아니라 광장과 놀이터, 운동장, 옥상까지 지역 주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해 새로운 공동체의 중심이 되도록 했어요.
KINONEKINO와 Petrské předměstí는 특히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예요. 두 곳 모두 제 아내 Bára의 고향인 작은 도시 Planá에 있거든요. Petrské předměstí에서는 지난 50여 년 동안 교통 중심 공간으로 변해버린 역사도시의 일부를 재생하면서 장소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찾으면서, 현대적인 건축 언어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저희의 작업을 통해 이곳이 다시 도시의 중심적인 장소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라하 Vyšehrad의 성벽 ⓒXTOPIX architekti
Pick List
Pavel Buryška’s 공간 pick
– Vyšehrad (Click!)
저희 사무실은 프라하 Vyšehrad의 성문 바로 아래에 있어요. Vyšehrad는 체코의 역사가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 굉장히 신비로운 장소예요. 프라하성만큼 관광객이 많지 않으면서도 공간이 넓고 지형이 다양하고, 중세 초기부터 체코 국가의 형성기와 그 이전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이 한 장소에 겹쳐 있어요. 지금도 고고학 조사와 발굴이 계속되고 있어서 새로운 층위와 정보가 끊임없이 드러나는 곳이에요.
저는 이런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도시의 가치는 어느 한 시점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층이 더해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체코, 특히 프라하의 문화유산 관련 행정은 무엇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오랜 대화와 조율의 과정이 어렵더라도, 그 과정에서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XTOPIX architekti가 좀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유형이나 도시적 주제가 있나요?
Pavel Buryška 현재는 보다 큰 도시적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와 공동 설립자인 아내 Bára는 대학원 시절부터 도시적이고 이론적인 스케일의 작업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사무소를 시작한 지 약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학교에서 다루던 가상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라는 점이 다르죠. 그동안 다양한 규모의 작업에서 쌓은 경험을 이제 도시 규모의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고 있어요.
XTOPIX architekti에게 건축은 많은 사람의 삶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다. 건축을 통해 공간에 재치와 신비로움, 장소의 기억과 소속감을 담을 수 있고, 유쾌함과 용기도 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건축을 통해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XTOPIX architekti의 건축은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계속 완성되어 가는 중에 있다.
자료제공 XTOPIX architekti(www.xtopix.cz)
글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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