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밀도 높은 저층 주거지에서 단독주택은 개방감과 사생활 보호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게 해요. 암사동주택은 이를 단순히 집을 닫는 방식이 아니라, 시선을 조절하고 가족 간의 거리를 새롭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집이에요. 마이아카이브는 하나의 콘크리트 외벽 안에 세 개의 목재 박스를 배치해 부부와 딸 가족에게 각자의 생활 영역을 마련하고, 박스 안과 밖을 오가며 독립과 연결이 공존하는 관계를 만들었어요. 내부창을 통해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집의 중요한 특징이에요.
재료와 디테일 역시 형태적인 완성도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목재와 노출콘크리트에 하나의 리듬을 부여하면서도 시공성과 경제성, 유지관리까지 함께 고려했어요. 그렇게 암사동주택은 가족의 생활 방식과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현장에서의 현실적인 고민이 하나의 공간으로 구현된 집이 되었어요. 2026 서울특별시 건축상 신진건축상을 수상한 암사동주택을 통해, 마이아카이브가 생각하는 ‘함께 살면서도 각자의 거리를 지킬 수 있는 집’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Editor 김도아
▼ List ▼
→ [시선을 조율하는 집]
→ [느슨하게 연결된 가족]
→ [현장에서 완성되는 디테일]
[시선을 조율하는 집]

– 기존 주택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느낀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특정한 형태의 집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건축주가 기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새로운 집에서는 무엇을 바라는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건축주께서는 같은 대지의 구옥에서 약 30년 동안 거주하셨어요.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지만 앞집 베란다에서 집 안과 마당이 그대로 내려다 보여 거실과 안방의 커튼을 늘 치고 생활하셨고, 마당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계셨어요.
집의 면적은 넓었지만 실제 부부가 사용하는 공간은 한정적이었고, 주방과 욕실은 협소했어요. 자녀들이 출가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공간도 많아졌고요. 반면 방학이 되면 미국에 사는 딸 가족이 방문해 일곱 명이 함께 생활해야 했어요. 결국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가족들이 하나의 집 안에서 어떻게 편안하게 공존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는 모든 관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기존 집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커튼을 늘 닫아두고, 마당도 충분히 사용하기 어려웠어요.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었나요?
네,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였어요. 건축주의 첫 번째 요구사항도 ‘밝고 답답하지 않은 집’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고요. 단독주택에서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완전히 닫아버리면 마당과 개방감이라는 장점을 잃게 돼요. 반대로 도로나 이웃집을 향해 크게 열면 결국 커튼으로 다시 창을 가리게 되고요.
그래서 외부의 시선은 막으면서도 내부에서는 깊은 시선과 개방감을 가질 수 있는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집 전체를 콘크리트 외벽으로 감싸고 필요한 곳에 선택적으로 개구부를 내어, 밖에서는 집 안이 쉽게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마당과 하늘,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어요. 사생활 보호를 단순히 ‘닫는 것’으로 해결하기보다 어디를 얼마나 열고, 어디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를 조절하고자 했어요.

– 설계 과정에서 실제로 이웃집에 들어가 창문의 위치를 확인한 점이 인상적이에요. 도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직접 시선을 확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집에서는 창을 디자인적인 요소로 보기보다 이웃과의 실제적인 ‘시선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건축주께서는 같은 동네에서 약 30년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앞집과 옆집의 구조와 생활 방식을 저희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어요. 건축주께 협조를 구해 실제 이웃집에 들어가 대지를 바라보면서 창문의 위치와 높이를 확인했고, 그 시선이 우리 집의 어느 부분과 만나는지도 직접 살펴봤어요. 도면에서는 두 건물의 위치와 높이를 알 수 있지만, 실제 사람이 창 앞에 서서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외벽의 개구부와 보, 담장의 높이와 위치를 조정했어요. 주변을 단순히 치수나 조건으로 읽기보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바라보고 생활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했어요.
– 부부와 방학마다 머무는 딸의 가족을 각각 하나의 목재 박스로 구성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처음부터 ‘박스’라는 형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평소에는 부부 두 분이 생활하지만 방학이 되면 딸 가족까지 일곱 명이 함께 지내야 했어요. 서로 다른 생활 패턴과 수면 리듬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조건이었죠. 그래서 각자에게 독립적인 영역을 주면서도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하나의 목재 박스를 하나의 생활 영역으로 설정하게 되었어요.

1층의 두 박스는 각각 아내와 남편의 영역으로, 2층의 박스는 딸 가족 다섯 명의 영역으로 계획했어요. 세 개의 박스를 하나의 콘크리트 외벽 안에 배치하면서 ‘각자의 집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집’인 구조를 만들었어요.
[느슨하게 연결된 가족]
– 박스 안에는 침실과 욕실 같은 개인 공간을, 박스 밖에는 거실과 서재, 식사 공간 같은 공동 영역을 두었어요. 이러한 구분은 가족의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건축주 부부는 함께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요. 사업과 가정의 일이 맞물려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오히려 각자가 쉴 수 있는 적절한 거리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스 안에는 개인적인 공간을 두고, 박스 밖에는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배치했어요.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필요할 때는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고, 다시 밖으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가족이 항상 함께 있는 집보다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사생활 보호는 단순히 집을 닫는 것으로 해결하기보다, 어디를 얼마나 열고 어디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풀고자 했어요.”
– 각 박스에 둔 내부창도 가족 간의 거리를 조절하는 장치처럼 보여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었나요?
저희는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는 ‘느슨한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파트에서는 거실과 방이 명확히 구획되고, 그 사이를 하나의 문이 연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관계 역시 문을 열고 닫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구분될 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이 집에서는 창 너머로 서로의 모습이 보이고, 방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어요.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관계인 거죠. 현장에서 실내창을 설명드렸을 때 건축주께서 농담으로 “생사 확인은 잘 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말처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자 했어요.
– 특히 건축주 아내의 영역과 연결된 실내창과 벤치는 손주들의 놀이 공간으로도 사용된다고요. 이런 장면도 처음부터 예상했나요?
실내창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었어요. 가족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어요. 아내의 영역에 있는 실내창과 맞닿은 벤치는 거실과 박스 안을 연결하는 동시에 손주들이 앉거나 머무는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해요. 손주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거나, 서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거죠.
이런 작은 장치들이 가족의 관계를 직접 규정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목재 박스를 쌓고 외벽을 콘크리트로 감싸면서, 집 안에 또 하나의 안과 밖을 만들었어요.”

– 이 집에서 ‘박스 안’과 ‘박스 밖’은 단순히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을 구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여요. 두 영역을 어떻게 생각했나요?
박스 안은 사적 공간, 박스 밖은 공용 공간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에서 출발했어요. 하지만 박스 밖은 단순한 공용 공간이라기보다 저희가 만들고자 했던 ‘외부 같은 내부’를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어떤 공간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다시 또 하나의 문을 마주한다면, 내가 서 있는 곳은 내부일까요, 외부일까요? 저희는 하나의 주택 안에서도 이렇게 여러 층위의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목재 박스를 콘크리트 외벽으로 다시 감싸면서 집 안에 또 하나의 안과 밖을 만든 셈이에요. 박스 안에서는 아늑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박스 밖에서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외부에 가까운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현장에서 완성되는 디테일]
– 이러한 ‘박스 안과 밖’의 차이는 마감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요. 같은 목재를 다르게 시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간의 차이를 형태뿐 아니라 재료를 경험하는 방식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목재 박스 내부는 보다 정돈되고 안락한 느낌을 주기 위해 화이트오크 무늬목 합판을 간격 없이 밀착해 시공했어요. 반면 박스 외부는 화이트오크 무늬목 합판을 45mm 폭으로 재단한 뒤 2mm 간격을 두고 시공했고요.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취부 방식에 차이를 두어 박스 안에서는 하나의 ‘내부’를, 박스 밖에서는 조금 더 외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결국 박스 안과 밖은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이라는 기능적인 구분을 넘어, 하나의 집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의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예요.

– 목재와 송판 노출콘크리트에 동일한 45mm 폭의 리듬을 적용했어요. 이 치수에는 시각적인 이유뿐 아니라 시공상의 이유도 있었다고요?
네. 45mm라는 폭은 단순히 미감을 위해 정한 치수가 아니에요. 방킬라이 데크재의 기성재 폭이 90mm인데, 이를 절반으로 나누면 45mm가 돼요. 만약 40mm처럼 별도의 치수를 정했다면 여러 번 재단해야 하고 자재 손실과 폐기물도 늘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45mm는 디자인적인 리듬을 만들면서도 시공자의 작업성과 자재 효율을 함께 고려한 결과예요. 저희는 설계자가 먼저 디테일을 정한 뒤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하도록 요구하기보다, 실제 자재의 규격과 시공 방식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설계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건축의 완성도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현장에서 어떻게 가공되고 시공되는지까지 포함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 이런 태도는 목재 슬라이딩 도어 같은 다른 디테일에서도 이어진 것 같은데요. 결국 마이아카이브가 생각하는 ‘건축의 완성도’란 무엇인가요?
목재틀로 문을 직접 제작하면 비용이 높아질 뿐 아니라, 화장실이나 주방처럼 습기가 많은 공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휨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일반 아파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ABS 도어 위에 화이트오크 무늬목을 덧붙이는 방식을 택했어요. 제작 단가를 낮추면서 습기로 인한 하자 가능성도 줄일 수 있었어요.
저희는 디자인을 먼저 정하고 시공자에게 맞추라고 하기보다, 건축주의 예산과 시공자의 작업 능률을 함께 고려하면서 설계 의도를 구현할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 과정에서 저희만의 디테일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요. 건축의 완성도는 단순히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재료가 현장에서 어떻게 가공되고 시공되는지까지 포함한 결과가 건축의 완성도라고 생각해요.


– 암사동 주택은 2026 서울특별시 건축상 신진건축상을 수상했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이아카이브가 지금까지 고민해온 ‘집’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주택을 설계할 때 공간적인 실험성과 실제 건축주의 생활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암사동주택 역시 새로운 형태 자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건축주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기존 생활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낸 결과물이에요.
서울의 밀도 높은 저층 주거지 안에서 가족이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 이웃의 시선과 관계를 조절하는 방법 그리고 설계 의도를 실제 시공 과정에서 구현하는 방법까지 하나의 집 안에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 점에서 암사동주택은 저희가 지금까지 고민해온 ‘집’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 Profile –

마이아카이브 건축사사무소 / 이해민, 김대현 건축가
흩어진 요소들을 연결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건축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대지의 조건, 프로그램, 사용자, 사회적 맥락처럼 본래 서로 독립적이고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요소들이 설계를 통해 엮이면서 이전에는 없던 질서와 의미가 생성된다. 별이 모여 별자리가 되고, 개별의 나무가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듯 건축은 ‘연결’이라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드러낸다.
건축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의도된 불완전성과 모순을 내포한 상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와 외부, 존재와 비존재처럼 서로 상반되는 조건을 배제하지 않고 공존시키며,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통해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한다.
마이아카이브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https://myarchive.kr
다음 [비욘드 아키]에서는 또 다른 건축물과 또 다른 건축가의 시선으로 프로젝트 너머의 건축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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