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 언덕 위, 오래된 축대와 벽돌집 사이에 자리한 ‘청운동 P씨 댁’은 한 사람의 어린 시절과 오랜 부재,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간이 겹쳐 있는 집이다. 건축가는 이곳을 새롭게 바꾸기보다 이미 남아 있는 기억과 장소의 흔적을 읽는 일에서 출발했다. 1987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벽돌 입면과 마당의 소나무, 주변의 오래된 집들은 그대로 남기고, 그 안에 새로운 생활을 담기 위한 철골구조와 금속, 유리벽돌을 덧입혔다.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한 집 안에 중첩시킨 청운동 P씨 댁은 2026 서울특별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집의 리노베이션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과 새로운 것을 더하는 일을 명확히 나누지 않는다. 붉은 벽돌과 빨간 금속, 조적벽과 철골기둥처럼 서로 다른 시간의 재료와 구조가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며 집의 다음 시간을 만들어간다. 건축주는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로 돌아왔고, 건축은 그 귀환을 과거의 복원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이어준다. 청운동 P씨 댁을 통해 기억을 남기면서도 현재를 받아들이는 리노베이션의 방식과, 건축가가 생각하는 ‘고쳐 쓰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김도아
▼ List ▼
→ [돌아온 집, 남겨진 시간]
→ [벽돌 위에 겹쳐진 새로운 시간]
→ [고쳐 쓰며 다음 시간을 만들다]
[돌아온 집, 남겨진 시간]

– 청운동 P씨 댁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나요?
집이 위치한 장소와 주변 환경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집은 청운동 언덕의 십여 미터 높이 축대 위에 자리해 마치 절벽 위에 지어진 듯했어요. 축대 아래 남쪽으로는 서울의 경관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북악산의 능선이 마주하고 있어요. 1987년에 함께 지어진 7채의 벽돌집과 마당의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 바위도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이런 요소들이 오래된 마을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 집만의 특별한 장소성을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면서 떠나 있던 시간과 다시 돌아와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건축주에게 이곳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이자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장소예요. 한 사람의 기억이 깊게 쌓여 있는 집을 고칠 때, 그 기억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읽고 다루고자 했나요?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떠나 있던 시간과 다시 돌아와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롭게 바꿀지 구분하는 일이 중요했어요. 과거의 시간을 간직할 부분은 유지하고, 새로운 삶을 담아야 하는 부분은 변화를 더했어요.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시간이 한 집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 집중했어요.

– 기존 벽돌 입면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래된 벽돌집을 새로 짓지 않고 고쳐 살고자 하는 건축주의 선택에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애정과 함께 같이 지어진 주변 집들과의 조화를 위한 배려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의 외부는 지어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반면, 내부는 오랜 임대 기간 동안 공간과 구조, 마감이 모두 바뀌었어요. 때문에 기존의 벽돌 입면은 집이 위치한 장소와 마주한 환경과 함께 과거의 시간을 전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유지했어요.
[벽돌 위에 겹쳐진 새로운 시간]
– 외부에는 과거의 벽돌을 남긴 반면, 내부는 현재의 구조 기준과 새로운 생활을 담기 위해 철골구조로 재구성했어요.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한 외피와 구조가 한 집 안에서 어떻게 관계 맺기를 바랐나요?

시간을 잇는 일은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조적벽 구조 위에 격자 형태의 철골기둥 구조가 겹쳐지도록 구성했어요. 과거를 지켜온 벽돌과 새로운 시간을 만드는 철골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 서로를 지지하도록 했어요. 두 구조가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새로운 공간의 질서를 만들기를 바랐어요.
“과거를 지켜온 벽돌의 조적구조와 새로운 시간을 구성하기 위한 철골구조가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서로를 지지하고 공간을 구성해요.”
– 기존 집의 내부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과거의 공간적 흔적은 어느 정도까지 남기고 어느 부분부터 새롭게 해석했나요?
집의 내부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었지만, 남아 있던 벽돌 입면은 집의 외곽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외곽은 유지하면서 내부의 새로운 구조를 덧입혔어요. 철골기둥의 격자구조는 안마당 쪽으로 미끄러지듯 배치해 내·외부에 걸쳐 겹쳐지도록 했어요. 길을 향한 기존 벽돌 입면은 남기고, 남쪽의 마당과 도시 풍경을 향해서는 보다 열린 입면을 만들었어요.

– 원형 철골기둥을 벽 밖으로 드러내고 캐노피와 처마, 난간, 현관문 등에 붉은 금속을 사용했어요. 새로운 개입을 기존 건축과 비슷하게 감추기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 집의 시간이 과거에만 머물거나,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덮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과거를 보여주는 벽돌과 새롭게 더해진 금속이 모두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했어요. 두 재료가 나란히 존재하면서 이 집에 서로 다른 시간이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쳐 쓴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청운동 P씨 댁’에서 빨간색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새로운 재료가 기존의 붉은 벽돌과 닮아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가졌으면 했어요. 그래서 빨간 금속과 유리벽돌을 사용했어요. 완전히 다른 색을 더하기보다는 기존 벽돌의 색을 이어받으면서, 재료와 질감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시간이 더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금속의 빨간색은 기존 벽돌과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대비될지를 고려해 밝기와 채도를 정했어요. 공간 안에서 색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느껴질지도 중요했어요. 가까이에서는 벽돌과 금속이 서로 다른 재료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멀리에서는 하나의 붉은 계열로 읽히기를 바랐어요.
결국 이 집에서 빨간색은 과거와 현재를 완전히 분리하기보다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요. 기존의 붉은 벽돌을 존중하면서도 새롭게 더해진 부분의 존재를 감추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고쳐 쓰며 다음 시간을 만들다]
– 유리벽돌과 유리블록은 기존의 붉은 벽돌과 닮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빛과 질감을 만들어요. 서로 다른 재료를 나란히 놓으면서 시간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요?
벽돌과 유리벽돌은 같은 조적의 방법으로 쌓이지만 공간을 한정하는 방식은 달라요. 벽돌벽은 무겁고 두텁게 쌓여 내부와 외부를 명확히 나누는 반면, 유리벽돌은 금속 프레임에 끼워져 바닥과 천장에서 떨어진 채 가볍게 떠 있도록 계획했어요. 공간을 구획하지만 완전히 한정하지 않고, 투명한 물성을 통해 중첩된 공간의 경험을 만들어주도록 했어요.


– 옹벽의 가장 높은 곳에 세운 원형 벽에는 건축주 어머니가 만든 달항아리 조각이 사용됐어요. 이 벽은 가족의 기억을 담는 상징적인 장치인 동시에 실제 공간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도록 계획했나요?
원형 벽은 새로 지어진 높은 건물로부터 집을 가려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에서 출발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귀환’이라는 사건과 달항아리에 대한 상징을 통해 집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치이기도 해요. 내부에서는 1층에 전시된 달항아리의 모습과 겹쳐지고, 2층 욕조 옆 창밖으로 드러나며 그 존재를 알려요. 외부로는 십여 미터 높이의 옹벽 위에 놓여 골목을 지나며 집을 올려보는 사람이나 이 집의 모습을 접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를 바랐어요.

“이 집의 시간이 과거에 매몰되거나 새롭게 덮여버리지 않기 위해 두 시간을 표현하는 벽돌과 금속이 모두 드러나기를 바랐어요.”
– 건축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리노베이션은 무엇인가요?
저는 건축을 고치는 일도 결국 과거를 바탕으로 다음 시간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은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고,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관계의 흔적을 담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축을 고쳐 쓴다는 것은 과거를 이해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을 고민하는 일이에요.

동해 폐쇄석장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리노베이션이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과거를 소중하게 바라보는 마음과 비판적인 시선을 함께 가지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 Profile –

김효영 건축사사무소 / 김효영 건축가
김효영 건축사사무소는 건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 감정 이입하여 성격을 찾아내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건축과 지금의 우리를 묶어내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출강중이고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였다. 노을공원 아트 파빌리온 ‘새로운 지층’으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청운동 P씨댁’으로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외 주요 작업으로 울산 바닷가벽집, 자람터 어린이집, 점촌 기와올린집, 문경 복터진집, 압구정 근린생활시설, 동해 폐쇄석장 리모델링, 인제 스마트복합쉼터 등이 있다.
김효영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https://www.khyarchitects.com
다음 [비욘드 아키]에서는 또 다른 건축물과 또 다른 건축가의 시선으로 프로젝트 너머의 건축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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