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수많은 언어와 문화가 얽히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건축은 여전히 ‘사람이 머무는 방식’을 고민하는 행위다. 특히 낯선 땅 위에서 한국의 공간을 짓는 일은 단순한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studio [em]pathy의 ‘Assembled Void – 뉴욕 한국문화원 도서관’은 목재를 매개로 한국적 공간의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도서관 전체는 서가가 둘러싸고 중심이 비워진 구조로, 한옥의 안마당을 연상시키는 중정을 형성한다. 가구와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퍼니텍처(Furnitecture)’ 개념을 적용해 서가 자체가 구조체가 되었고, 포플러 목재와 금속을 조합한 반복 모듈을 통해 유기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내부를 따라 걷는 동선은 하나의 순환 고리처럼 이어지며, 외부 테라스와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빛과 녹지가 교차하는 개방적인 공간 경험을 선사한다.
인터뷰에서 건축가는 “도서관은 글을 짓고, 관계를 짓고, 문화를 짓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옥의 공간감을 현대적으로 옮기되,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자연의 결을 다시 불러들이고자 했다. Assembled Void는 그렇게 완성된, 나무의 결과 인간의 숨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시간, 문화, 그리고 관계를 함께 짓는 일이다.
진행: 김도아
인터뷰이: 최창학 건축가
출처: studio [em]pathy
“studio [em]pathy에게 Assembled Void란
뉴 아키타입(New Archetype)이다.”
[짓다에서 시작된, 새로운 공간의 언어]

Assembled Void의 방향성을 어떤 키워드로 설정하셨나요?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첫 번째는 ‘짓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어요. 도서관이라는 장소, 그 안의 책, 그리고 이용하는 사람 모두가 글을 짓고, 집을 짓고, 관계를 짓고, 문화를 짓는 하나의 행위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구축적인 공간감이 느껴지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K-Space’를 대변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K’가 한국 문화를 대표하지만 정작 한국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잖아요. 그래서 문화원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바탕으로 전통 건축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이웃집을 방문하듯 편히 머물 수 있는 집 같은 도서관을 지향했어요.
“도서관은 글을 짓고, 집을 짓고,
관계를 짓고, 문화를 짓는 하나의 행위를 담는 공간이에요.”
도서관의 공공적 기능이 이번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문화원은 해외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류하는 전초기지 같은 공간이에요. 여러 시설 중에서도 도서관은 방문객이 가장 자유롭게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죠. 이런 공간의 성격이 출발점이자 디자인의 단초가 되었어요. ‘뉴욕의 한국문화원 안에 들어설 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동시대 도서관 디자인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뉴욕이라는 맥락 속에서 도서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편안하게 머무르며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어요.
![Interior view of a modern library designed by studio [em]pathy, featuring wooden bookshelves arranged in a circular layout, a central reading area, and large windows allowing natural light to illuminate the space.](https://i0.wp.com/masilwide.com/wp-content/uploads/004_Studio-Empathy_Library-at-Korean-Cultural-Center_%C2%A9Michael-Moran-Image-Courtesy-of-studio-empathy-and-PRAXES.jpg?resize=800%2C536&quality=89&ssl=1)
한국문화원이라는 상징적 장소성은 어떻게 공간으로 표현되었나요?
전통 한옥이 지닌 형태적 아름다움과 기능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현하고자 했어요. 그 결과 책을 읽는 시간 동안 고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세대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어요. 마치 옛 고향집을 방문하듯, 친구의 집을 찾듯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 즉, 한옥의 공간감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그런 도서관을 의도했어요.
[목재로 쌓아 올린 구조와 감각의 대화]

뉴욕의 맥락 안에서 ‘한국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목재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공간 디자인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바이오필릭(biophilic) 개념처럼, 도시적 맥락 속에서 자연적 요소를 접목하는 시도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이런 자연에 대한 존중과 순응, 지속가능성은 이미 우리 전통 건축 속에 담겨 있죠. 저는 전통 건축의 형태적 원형을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미학으로 재해석하고, 자연주의적 가치를 중심으로 구현하고자 했어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우리 공간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 도서관을 제안한 거예요. 전통 목조 건축의 장점을 간결한 형태 언어로 풀어내어, 한국적 공간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간 전체를 구성하는 목재 모듈 구조가 매우 인상적인데요?
서가로 둘러싸인 공간이 한옥의 안마당 분위기를 재현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이를 위해 ‘퍼니텍쳐(Furnitecture)’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가구의 디자인 요소를 건축적 구조로 확장하는 방식이에요. 또한, 한옥의 벽면을 이루는 가구식 목구조나 처마의 공포(栱包) 구조에서 착안해 서가를 설계했어요. 밝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위해 포플러 나무를 사용했고, 제작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규격의 반복 모듈을 적용했어요. 각 부재는 얇은 목재와 금속 부품으로 이루어져 시각적 부피를 최소화하고, 책이 공간의 중심이 되도록 했죠. 서가 상부는 전통 공포 양식을 차용한 격자형 구조로 계획해 책등의 다채로운 색감과 조화를 이루게 했고, 목재와 석재의 대비를 통해 생동감 있으면서도 따뜻한 도서관의 풍경을 완성했어요.

“우리는 전통의 언어로 새로운 건축적 원형을 짓고 있습니다.”
모듈화된 구조는 어떤 공간적 흐름을 만들어냈나요?
도서관의 공간 구성은 ‘순환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기능적인 구획에 머무르지 않고, 서가 배열을 통해 연속적인 동선과 교차가 만들어지는 공간을 계획했어요. 서가는 중심이 비어 있는 장방형 루프 형태로 구성했고, 일정한 개구부를 두어 중심 안팎을 자연스럽게 연결했어요. 이 동선은 외부 테라스로 이어지며, 방문객이 서가를 따라 걷고 머무는 동안 끊김 없는 흐름을 느낄 수 있어요. 서가, 책, 그리고 외부 녹지가 중첩되며 내외부가 어우러지는 도서관 풍경이 완성됐어요.
목재를 구조체로 사용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과, 실제 시공 과정에서 직면했던 도전이 있었다면요?
현대적으로 가공된 목재(각재·판재)를 사용했을 때 기능적·미학적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를 탐구하는 것이 과제였어요. 또한 저예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비용 효율성, 제작 용이성을 고려해야 했어요. 서가, 천장 조명, 리셉션 데스크 등 모든 목재 요소를 동일 두께의 부재로 제작해 폐자재를 최소화하고, 단가와 제작 기간을 절감했어요. 이를 통해 디자인 언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환경 친화적인 도서관을 구현할 수 있었어요. 다만 예산 제약으로 인해 보다 정교한 결합 방식을 적용하지 못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제작해야 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사람이 머무는 방식으로 완성된 건축]

그 안에서 방문자가 경험하게 되는 공간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한옥의 안마당을 거니는 듯한 공간 경험을 떠올리며 설계했어요. 열람 구역은 별도로 두지 않고, 서가 중심의 중정형 공간을 열람·모임·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핵심 공간으로 활용했어요. 좌석은 정방형 스툴 형태로 제작해 좌석·받침대·모듈형 가구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바닥은 석재로 마감했으며 허브가 심긴 플랜터를 두어 한옥의 작은 마당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더했어요. 이렇게 ‘퍼니텍쳐(Furnitecture)’ 개념을 통해 한옥의 복도와 마당을 오가는 감각을 서가 디자인과 공간 배치 속에 통합했어요.
앞으로 studio [em]pathy가 뉴욕에서 하고자 하는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Assembled Void는 제게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예요. 사무실을 연 뒤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이자, 첫 공공 프로젝트이며, 뉴욕에서의 첫 작업이에요. ‘인덱싱’이라는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각각의 요소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원형(archetype)을 탐구하고, 재료 실험을 지속하면서 새로운 건축적 원형을 제시하는 작업을 이어가고자 해요.
-Profile-

최창학은 스튜디오 엠퍼시(studio [em]pathy)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건축, 인테리어, 가구, 그래픽, 예술 작업 등 전 분야의 디자인을 총괄한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GSAPP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건축설계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인테리어 디자인 ‘베스트 오브 이어 어워드’, 그랑프리 뒤 디자인 어워드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UIA와 대한건축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100인 건축가’로 이름을 올렸다.
studio [em]pathy 홈페이지 studioempathyny.com
[비욘드 아키]는 건축물 너머에 있는 건축가들의 생각과 에피소드를 다루는 웹전용 인터뷰 콘텐츠로, 매월 하나의 주제 아래, 3개의 준공 건축물과 설계자 인터뷰가 게재될 예정입니다.
아직 이전 글을 못 보셨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 [비욘드 아키] Prologue_숨 쉬는 건축, 나무의 온도
다음 이야기에서는, 김선형 건축가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2025. 11. 10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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