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를 제작한 영화사 ‘기린그림’의 김종신, 정다운 감독을 만나다.

파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출판도시는 주말이면 나들이를 가는 가까운 동네였다. 책과 영화, 봄이면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 낮은 건물들과 한가로운 풍경들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출판 ‘도시’가 아닌 출판 ‘단지’라고 불렀다. 도시가 아닌 산업단지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처음의 가치를 향해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삼 출판도시의 추억을 상기시켜주었고, 고향에 있는 출판도시에 대한 애정이 샘솟게 했다.
도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만들어진다. 공간, 건축은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에 의해 채워진다. 그렇다면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영화는 우리의 도시를 바라보며 함께 가꿔 온 현재의 도시가 과연 우리가 원했던 모습인지 생각하게 한다.
4월에 개봉한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의 제작을 맡은 동갑내기 부부의 영상에서는 공간 속 사람 냄새가 난다. 공간을 넘어 그 속의 이야기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린그림¸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봄이 완연한 4월 중순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김종신, 정다운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기린그림’이라는 이름이 귀여워요. 발음 연습 문장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김종신 맞아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앨범 중에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이라는 앨범이 있어요. 제가 그래서 기린 그림이라는 말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또, 영화사 이름을 얘기할 때 보통 ㅇㅇ픽쳐스, ㅁㅁ프로덕션 이런 이름을 많이 쓰는데 한글이름을 써보자 싶어서 결정했어요.
정다운 그리고 저희 아들이 기린을 좋아해요. 기린 눈이 진짜 아름답잖아요. 굉장히 아름다운 눈을 가진 기린의 눈을 통해서 공간의 아름다움, 건축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다는 뜻도 있었어요.
두 분이 건축과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왜 건축 영상이었나요?
정다운 원래 한국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어요. 공간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쟝센, 영화 언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운이 좋게도 저희가 영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건축하고 영상을 접목한 코스가 있었고, 공간의 이야기성을 좀 더 탐구해보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죠.
또, 남편의 고향이 제주에요.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마침, 수풍석 미술관이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너희가 가봐야 할 공간이 있다”며 데리고 가주셨어요. 거기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너무나 따뜻하게 사람을 위로하는, 제주의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받은 감동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다 생각했었죠. 바로 시작할 용기가 없어 미루다 2011년에 이타미 준 선생님, 그러니까 유동룡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더 늦으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그분의 따님, 유이화 건축가를 찾아가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저희 제작사가 탄생하게 되었죠.

기린그림의 탄생은 공간이 주는 감동 때문이었네요. 홈페이지를 보니 다큐멘터리 외에도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작업들인가요?
김종신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눴어요. 다큐멘터리 필름은 저희가 기획해서 진행해요.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등이 여기에 속하죠. 다른 하나는 건축가, 건축주분들이 의뢰를 해주세요. 공간을 기록하기 위한 작업부터 시공 과정과 완공 후 모습을 담아내고 있죠. 또 전시 영상도 하고 있어요. 건축전 영상을 작업하기도 하고 예술가분들의 작업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선택을 받아서 하게 되는 거고, 최근에는 정림건축과 매스스터디스가 하는 네이버 데이터 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어요. 조금씩 저희를 알아봐 주시고 선택해주시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작업 <이타미 준의 바다>는 8년, 이번 <위대한 계약>은 3년의 제작기간이 걸렸어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대상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정다운 두 프로젝트 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타미 준의 바다>의 경우 앞서 말씀드렸듯이 공간에서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고요. 그게 저희를 매우 크게 움직였어요. 또 파주 출판도시 같은 경우는 저희가 영국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2008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주제였던 거에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에 참여해 도울 일이 있었죠. 그때 출판사 대표님들과 건축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2019년에 파주 출판단지 3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를 조합에서 기획하고 있었고, 파주에 있는 명필름의 이은 대표님께서 먼저 다큐멘터리 작업을 제안해주신 거죠. 10년 전부터 차곡차곡 애정이 쌓인 출판도시를 담는 작업도 또 다른 운명적인 프로젝트라 느껴졌어요.
두 영화 모두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군요. 이번 영화는 30여 년의 세월을 약 100분으로 줄여야 했어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거 같아요.
김종신 굉장히 어려웠어요.(웃음) 과거의 이야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다뤄서 ‘이렇게 출판 도시가 훌륭하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초반은 굉장히 속도감 있게 과거에서 현재까지 빠른 템포로 진행이 돼요. 그래서인지 후반부가 오히려 좋았다고 해주시는 관람평이 있는데, 저희는 오히려 기뻐요. 출판도시 현재의 부족한 부분이라든가, 파주 출판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모습, 생태 도시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또 개성과 서울의 중간에 있는 문화전진기지로의 미래를 보여 드리기 위해 많은 부분을 버리고 골라내야 했거든요. 아쉽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만족스럽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다운 그 방대한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균형감 있게 조절할까’와 ‘비판이라는 측면을 어떤 식으로 담아야 할까’하는 선택의 순간이 있었어요. 정말 방대한 이야기거든요. 저희는 이 출판 도시를 만든 분들이 처음에 가졌던 ‘공동성의 실천’이라는 가치, ‘좋은 도시를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자’ 라는 가치를 집중해서 표현하자는 결론을 내렸죠.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김종신 몇 가지 있는데요. 출판도시 촬영 초반에 현수막이 딱 걸렸어요. ‘출판도시에 약국이 생겼다.’ 그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지만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절대적으로 주거가 부족하니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엔 없었는데 지금은 은행도 있어요.
다른 하나는, 촬영을 할 때 남북 화해 모드가 한창이었어요. 출판단지로 향하는 표지판에 써진 문산이 어느 날 개성으로 바뀌고, 평양으로 바뀌었죠. 그래서 진짜 촬영하러 개성까지 가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런 기대를 했었는데, 그게 참 아쉬워요.
영화를 보면서 공간을 넘어 사람을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두 분의 시선이 참 따스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공간을 바라보고 분석하시나요?
정다운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건축은 모뉴먼트로 혼자서 가만히 서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죠.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 그게 저희한테는 중요해요. 저희는 공간을 볼 때 건축가와 건축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콘셉트로 지었을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고,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주는 무엇을 원했고, 건축가는 땅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어떤 디자인과 공간감을 만들어 냈을지 생각해요. 저희의 영상을 통해 마치 그곳에서 건축적 산책을 하는 것 같은 느낌과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요. 저희가 포착한 아름다움을 그 공간을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영상이 됐으면 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두 분이 생각하시는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이 궁금해지네요.
김종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애들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선 조화로운 공간이 필요해요. 서로 자기 땅에 꽉 채워 세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내놓아 골목이 생기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축이 중요하죠.
요즘 세대는 저희와 다르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어요. 좋은 공간을 찾아 생활반경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건축주가 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공간을 좋은 도시에서 함께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공공건축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원 이런 것들이 좋아져야 할 것 같아요.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네요.
정다운 동감해요. 건축이 딱 나만의 부동산이라는 걸 넘어 공공이 향유할 수 있길 바라요. 건물 앞을 지나다니는 건 건축주만이 아니잖아요.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실 건축이기 때문에 서로 조금 더 배려하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건축이 좋은 건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출판도시는 공동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출판인들과 건축가가 모였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던 도시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시각들이 넓어져야 우리가 사는 도시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번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시나요?
정다운 저희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도시가 필요할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도시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그런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도시 안에서 산다는 것은 부동산 이슈와 직접 연관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 너머 정말 우리의 중요한 도시의 가치는 무엇일까’하는 것에 파주출판도시가 시사할 수 있는 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자 희망사항이에요.
김종신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주거에 대한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어요. 대부분 부동산적인 것들, 팀을 나눠 의뢰자에게 어느 팀이 더 싸고 좋은 집을 보여주는지 경쟁을 하는 예능도 있고요. 재밌어요. 재밌는데, 저희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도시가 어떻게 좋아져야 하느냐’라는 그런 질문의 단초만 제공하기만 한다고 해도 저희 다큐멘터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에게 이번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추천해주신다면?
정다운 도시·건축 다큐멘터리로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잘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아름다운 생태 도시로서의 파주 출판도시를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요. 출판도시의 전경, 갈대 숲과 도시 습지로 철새들이 날아드는 아름다운 모습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또,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 출판도시 자체가 우리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김종신 말씀 잘하셨어요. 영화 전체가 하이라이트네요. 좀 너무했나요?(웃음)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정다운 영화를 보는 문화가 이제 달라졌어요. 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체험, 그것에 어울리는 영화라는 것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영화는 도시라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관에서 보시면 또 느낌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김종신 저는 학생분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도 봐주시면 좋지만, 건축과 공간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분들이 보시고,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실 수 있는 그런 멋진 건축가, 공간 계획자로 성장해주신다면, 저희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글 │ 에디터 김현경
사진 │ 에디터 김현경
자료 제공 │ (주)영화사 진진, 기린그림
댓글을 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