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CE에게 건축은 새로운 것을 덧씌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장소를 다시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밀도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INUCE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면적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기존 동네의 성격과 일상의 스케일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가 자리 잡는 일이다. 정원 담장과 지붕선, 건물 사이의 작은 간격, 집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리듬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요소들은 한 장소가 오래 쌓아온 질서이자 분위기다. INUCE는 새 건물이 분명히 동시대적이면서도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지역의 건축 전통을 이어가되 향수에 머물지 않고, 기존의 삶을 덮어쓰기보다 그 안에 스며드는 방식. 그들에게 건축은 변화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장소가 지닌 섬세한 관계를 계속 읽고 조율해가는 질문의 과정이다.
Interviewee Dirk U. Moench 건축가
Editor 김도아

최근 작업 안에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디르크 묀히 요즘 저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질문은 “사람들이 장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건축이 어떻게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에요. 중국에서는 도시와 마을, 그리고 광활한 풍경이 단 한 세대 만에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바뀌었어요. 유럽은 상황이 다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아픔이나 근본적인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건축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붙들 수 있을까요?
디르크 묀히 화려한 형태보다는 일상을 조용히 붙들어주는 건물들의 차분함에 더 관심이 가는 거 같아요. 가족의 삶, 공동체의 의례, 기억, 풍경, 노동, 예배 같은 것들이 담긴 건축물이요. 저는 건축이 안정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과거를 향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 깊이와 연속성 그리고 미래가 있다는 감각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방식으로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디르크 묀히 보통은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예산이 얼마인지,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만들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들은 조금 나중에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프로젝트 이면에 있는 더 깊은 문제를 이해하려고 해요. 이 건물이 무언가를 상징하기 위한 것인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혹은 정체성이나 치유, 상업,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죠.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에서도 반복해서 바라보는 지점이 있나요?
디르크 묀히 교회든, 주거 프로젝트든, 오피스 빌딩이든, 도시 재생 계획이든 기능은 모두 달라요. 하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의 인간적인 문제가 잠재해 있요. 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공간적인 형태로 담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축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Mountain Church of Julong ⓒShikai / INUCE
INUCE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요?
디르크 묀히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주룽 산악 교회(Mountain Church of Julong)를 꼽고 싶어요. 이 프로젝트에는 성서적인 원형, 풍경, 공동체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적 모방에 기대지 않는 현대적 성소에 대한 탐구가 담겨있죠. 그런 의미에서 주룽 산악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종교 건축이라기보다, 건축을 통해 묻고 싶은 질문들이 응축 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화샹 기독교 센터는 어떤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인가요?
디르크 묀히 화샹 기독교 센터(Huaxiang Christian Centre)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도시의 조밀한 도시 조직 속에서 기독교가 어떤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다룬 프로젝트에요. 가시성, 밀도, 그리고 급변하는 대도시 안에서 교회 공동체가 갖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죠. 이 프로젝트에서는 종교 건축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동시에 어떻게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Huaxiang Christian Centre ⓒShikai / INUCE
민장 라이프스타일 갤러리는 앞선 작업들과는 다른 조건의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어떤 작업이었나요?
디르크 묀히 민장 라이프스타일 갤러리(Minjiang Lifestyle Gallery)는 민강 남쪽 강변에 조성되는 새로운 소호 지구를 위한 임시 분양·전시 건물이었어요. 단 150일 안에 설계부터 시공까지 마쳐야 했고, 운영 기간도 3년 남짓으로 짧았죠.
설계, 프리패브, 시공이 동시에 맞물려 진행되어야 하는 강도 높은 작업이었지만, 현실적인 압박 너머에서 상업 건물도 기억에 남는 공간적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탐구한 프로젝트이기도 했어요.
그 안에서 방문자에게 어떤 장면과 경험을 만들고자 했나요?
디르크 묀히 건물을 물 위에 얹어 서로 엇갈린 두 매스가 수면 위에 떠 있는 듯 보이게 했고, 그 사이에는 하늘을 향해 열린 중정을 계획했어요. 방문객의 동선은 물, 하늘, 강, 도시, 공사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퀀스로 이어져요.
자연과 개발된 도시 사이를 거니는 영화적인 경험에 가까웠죠. 갤러리를 단순한 마케팅의 매개체로 취급하는 대신, 하나의 경험의 공간으로 디자인하고자 했어요.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관통하는 건축적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디르크 묀히 본질을 향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스타일이나 상징, 혹은 새로움으로 너무 빠르게 답을 내놓는 건축을 경계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자체의 내적 논리가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답을 유보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건물이 약하거나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떤 프로젝트는 강한 존재감이 필요하기도 하죠. 다만 그 존재감은 문제, 대지, 사람, 재료의 조건에서 자연스럽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해.
Minjiang Lifestyle Gallery ⓒShikai / INUCE
대지를 읽고 공간으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디르크 묀히 물론 빛, 경사, 접근성, 조망, 기후, 인접 건물 같은 물리적인 조건을 살펴요. 하지만 지형이나 자연 조건만이 대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독해 요소는 종종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마련이에요. 이 장소를 누가 쓰는지, 어떤 역사가 존재하거나 부재하는지, 이곳에 어떤 미래가 기대되는지, 어떤 삶의 방식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있는지 같은 질문들이 땅을 읽을 때 필요해요.

구조와 재료를 다룰 때, 기능을 넘어 어떤 가능성을 함께 보시나요?
디르크 묀히 물론이죠. 구조와 재료는 결코 단순히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무게를 지탱하면서 동시에 의미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벽 하나가 공간을 분리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하며, 액자처럼 감싸거나 고요하게 만들 수도 있잖아요.
재료는 건물을 일시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뿌리내린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분위기를 나중에 덧붙이는 무언가로 취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분위기는 건물이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태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재료의 사례가 있다면요?
디르크 묀히 이전에 설명드린 화샹 기독교 센터의 잔자갈 외장이 좋은 예시일 거 같네요. 잔자갈 마감은 한때 흔한 기법이었지만, 유리 커튼월과 타일로 가득한 현대 도시에서는 거의 잊힌 기술이에요. 저희는 의도적으로 이 소박한 재료를 다시 사용해 외벽은 붉은 화강암을 잘게 부숴 손으로 직접 붙여 완성했어요. 겉으로는 소박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빛 아래에서 교회 전체를 은은하게 빛나게 하는 요소가 되었죠.
‘교회’라는 단어가 건축물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를 뜻하듯이, 입면에 사용된 각각의 자갈은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수많은 개인들, 그들의 믿음과 헌신, 희생과 기여를 상징해요.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며 계속 되돌아가게 되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디르크 묀히 ‘집’이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저와 함께했어. 감상적인 의미의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어떤 장소, 기억, 풍경, 공동체 그리고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조건으로서의 집을 말해요.
이 질문은 아마 제 개인적인 이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브라질, 독일, 유럽, 아시아를 넘나들며 살아오다 보니 여러 문화 사이에서 유대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예민하게 느낄 수 있더라고요.
사람과 장소 사이의 유대감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디르크 묀히 중국에서는 이 질문이 엄청난 규모로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나라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 때로는 자신이 살던 지역을 벗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장소 앞에서 낯섦을 느낀다는 것을요.
건축이 이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사람과 장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잇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 방식이 있으신가요?
디르크 묀히 요즘은 스위스에서의 주거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요. 핵심적인 건축·도시 계획의 화두는 ‘나흐페어디히퉁(Nachverdichtung)’, 즉 ‘내부 밀도화’라는 건데요. 스위스 계획 법제가 개정된 이후 개발의 방향이 외부 확장에서 내부로 전환되었어요. 기존 주거지가 더 많은 주택, 더 높은 밀도, 더 활발한 삶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제게 흥미로운 질문은 단순히 ‘한 필지에 얼마나 많은 면적을 넣을 수 있는가’가 아니에요. 진짜 질문은 어떻게 하면 동네의 성격을 해치지 않으면서 밀도를 더할 수 있는가 인 거 같아요. 스위스의 마을과 교외 지역은 섬세한 질서를 갖고 있어요. 정원 담장, 울타리, 지붕선, 건물 사이의 작은 간격, 비공식적인 시선, 집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리듬 같은 것들이요.
디르크 묀히에게 건축은 압박받는 장소를 돌보는 일에 가깝다.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전통이 희미해지며, 풍경이 점차 잠식되는 상황 속에서 건축은 그 혼란을 더하는 존재가 아니라 장소가 다시 방향과 척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무엇보다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대지의 조건,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 이전부터 쌓여온 기억, 그리고 앞으로 그 장소가 품게 될 미래를 섬세하게 살피는 태도다. 새로운 건물은 변화를 막을 수 없지만, 그 변화가 조금 더 사려 깊고 인간적이며 뿌리 있는 형태로 드러나도록 만들 수 있다. 그에게 좋은 건축이란 낯설게 바뀐 장소 속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그곳을 알아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자료제공 INUCE(www.inuce.com)
글 박지성 에디터






























댓글을 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