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달리는 스쿠터, 즐비한 건축물의 창문과 테라스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대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 중 하나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특별한 디자인 요소로 사용된다. 대만의 텍스타일 디자이너 브랜드 JAINJAIN은 벽 위의 퍼티 자국, 방수페인트, 오래된 도시의 창문 패턴 그리고 공원의 모습까지 하나의 패턴으로 디자인해 대만의 풍경을 천 위에 담아낸다. 일상의 풍경을 천 위에 얹어 하나의 특별함으로 창작하는 JAINJAIN에게 도시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창작의 원천이다.
JAINJAIN이 도시 풍경을 자신만의 캔버스 위에 한 땀 한 땀 기록해 가는 여정을 함께해보자.
Interviewee Tzuyu Chen
Editor 박지성

JAINJAIN은 대만의 일상을 담아내는 텍스타일 디자인 브랜드라고요. 어떻게 JAINJAIN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브랜드에 담긴 의미도 궁금해요.
Tzuyu Chen 대학 시절에 ‘창의성의 기초’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을 탐구하고,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에 집중한 수업이었죠. 모든 창의적 영감은 결국 내면에서 길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나 자신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어요. 그 자기 인식이 지금 제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JAINJAIN을 한자로 표기하면 ‘減簡’ 인데요. 이 한자는 두 가지 개념을 담고 있어요. ‘감(減)’은 덜어냄, ‘간(簡)’은 단순함을 뜻하는데, 두 글자의 발음이 같아서 그 발음을 그대로 살려 ‘JAINJAIN’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디화스트리트와 JAINJAIN 매장의 풍경 ⓒ1,2번 – 박지성 에디터 / 3번 – JAINJAIN
한국 독자들을 위해 JAINJAIN이 위치한 동네를 소개해 주세요.
Tzuyu Chen JAINJAIN은 타이베이의 다다오청(大稻埕)에 있어요. 역사가 깊게 배어있는 곳이죠. 단수이강과 가깝다 보니 예전에는 중국 본토와의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어요. 덕분에 다다오청의 건물들은 민난(閩南) 전통 양식과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남방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매력이 넘치는 곳이에요. 1970~80년대 대만의 저명한 화가들도 이 거리를 화폭에 많이 담았고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들에는 언제나 풍부한 역사적 건축물이 있는데, JAINJAIN이 자리한 다다오청이 타이베이에서 그런 곳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건축적 매력 외에도, 디화스트리트(迪化街)는 역사적으로 대만 최고의 원단·섬유 거래 중심지였어요. 덕분에 이 일대에는 수입 원단, 트리밍, 단추 등 각종 부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요. 패션이나 텍스타일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소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작업 환경이에요.



도시의 일상 풍경을 모티프로 한 JAINJAIN 텍스타일 디자인 ⓒ JAINJAIN
도시의 풍경을 텍스타일 패턴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도시’를 작업의 주된 소재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Tzuyu Chen 도시를 떠돌며 시대마다 달라지는 건축 양식을 관찰하는 걸 워낙 좋아했거든요. 굳이 의도적으로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눈에 담긴 것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통해 종이 위로 옮겨지더라고요. 저에게 건축은 살아있는 역사책이에요. 도시마다 창문과 타일의 형태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까요.

텍스타일 패턴에 영감을 준 건축물ⓒ JAINJAIN
JAINJAIN의 패턴에는 시장, 거리, 간판, 건물 외벽처럼 평범한 도시의 일상적인 장면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Tzuyu Chen 저는 사람의 흔적에 특히 끌려요. 예를 들면 골판지 상자 위에 여러 색의 테이프가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패턴이라든가, 오래된 아파트 외벽에 누수를 막으려 덧바른 방수 페인트 같은 것들이요. 사람들이 완전히 ‘우연히’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흔적들이 디자인 학교에서 배우는 의도적인 자기표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점에서 저는 그걸 더 흥미롭게 느끼는 것 같아요.
대만의 도시는 한국과는 다른 밀도와 리듬을 가진 곳인데요. 디자이너로서 ‘대만의 풍경’은 어떤 의미인가요?
Tzuyu Chen 대만 어느 도시든 황혼 무렵 주택가를 걷다 보면 쓰레기차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파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줄지어 나오는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아니면 고개를 들었을 때 옥상 증축 공간과 확장된 베란다로 가득 찬 아파트 풍경을 보게 되거나요. 저에게 그게 바로 진짜 대만의 맛이에요. 대만의 맛은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맛이니까요.
걷고 싶을 때, 영감이 필요할 때 혹은 쉬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Tzuyu Chen 주말에는 주로 몰리 헌책방에 들르거나, 에슬라이트 아트하우스(Eslite Art House)에서 디지털 복원 영화를 봐요. 지난주에는 제가 좋아하는 한국 감독 이창동의 《오아시스》를 봤어요. 이창동 감독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데, 촬영이 늘 1970년대 대만 풍경을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종종 방문하는 에슬라이트 아트하우스는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이 아닐까 생각해요. 마치 70년대로 걸어 들어간 것 같은 의례적인 느낌이 있는 곳이에요.
가끔은 외할머니가 사시는 난터우(南投) 푸리(埔里)로 내려가곤 하는데요. 저에게 이동은 그 자체가 휴식이거든요. 움직이는 동안 늘 다양한 생각들을 흡수하게 돼요.

사우스 아메리카 커피 南美咖啡 ⓒ JAINJAIN
Pick List
-사우스 아메리카 커피 南美咖啡 (Click!)
타이베이 스린(士林)에 있는 사우스 아메리카 커피(南美咖啡)를 추천해요. 1970년에 문을 연 곳인데, 오래된 카페 특유의 분위기와 신문을 읽는 동네 단골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좋아요. 저는 오후에 애프터눈 티 세트(리필 가능한 커피와 샌드위치 콤보)를 주로 시키는데, 미디엄 다크 로스트 케냐 커피에 햄 에그 샌드위치 조합을 가장 좋아해요.
– 위루 카페與路咖啡 (Click!)
신타이베이에서는 다화역(大華站)이라는 작은 교외 역 바로 옆에 있는 위루 카페(與路咖啡)를 추천해요. 울타리도 거의 없는 철로 바로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플랫폼에서 5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카페가 있어요.
– 산댜오링三貂嶺 (Click!)
타이베이에 온다면 꼭 반나절을 내어 신타이베이의 산댜오링(三貂嶺)에 다녀오시길 추천해요.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기차로 약 40분이면 닿는 작은 산골 마을이에요. 세 개의 폭포를 볼 수 있는 산댜오링 폭포 트레일이 있고, 맛있는 동네 식당들과 오광(五廣)이라는 서점, 그리고 폐허 속에 자리한 카페 히테(cafe Hytte)도 있어요. 여유롭고 느린 시간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에요.


대만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쿠터 ⓒ 박지성 에디터
한국 독자들이 대만을 방문한다면 꼭 한 번은 경험해봤으면 하는, ‘대만 다운’ 장면이나 순간이 있다면요?
Tzuyu Chen 스쿠터를 타는 게 가장 대만스러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꽤 위험하긴 하지만요! 제 세대라면 누구나 스쿠터를 타고 거리를 누비던 기억이 있어요. 스쿠터는 본질적으로 자유를 상징하거든요.
꼭 먹어봐야 할 것도 있어요. 바로 우후 두유(五湖豆漿)라는 두유가게의 메뉴들인데요. 다양한 메뉴를 맛보기를 추천해요. 메뉴 하나하나가 다 맛있어요. 소우빙 유탸오(밀전병에 찹쌀 꽈배기를 넣은 것), 짭짤한 두유, 샤오롱바오를 꼭 맛보세요. 두유 가게야말로 정말 대만스러운 문화라고 생각해요.

카펠라 이베이의 커튼월에 비치는 풍경 ⓒJAINJAIN
특히 어렵거나 도전적이었던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패턴으로 표현하기 특히 까다로웠던 풍경이 있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Tzuyu Chen 2025년에 오픈하는 카펠라 타이베이(Capella Taipei)를 위한 단독 텍스타일 패턴을 디자인했어요. 저의 영감은 늘 오래된 주거지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낡은 건물과 사람의 흔적에서 창작 에너지를 끌어내는 데 익숙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고급 호텔의 안락함과 럭셔리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게 꽤 큰 도전이었어요.
카펠라 타이베이의 유리 커튼월에 반사되는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타이베이 아레나 주변의 모습을 담고 가로수길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였어요. 자연이 깃든 도시야말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니까요.



JAINJAIN의 작업물과 스케치 ⓒJAINJAIN
JAINJAIN의 작업물 중 가장 ‘대만다움’이 가장 잘 담긴 프로젝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으로 패브릭에 담길 도시의 풍경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Tzuyu Chen JAINJAIN이 만들어온 모든 텍스타일 패턴은 하나의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그 조각들이 모여 대만의 온전한 초상화를 완성해가는 거죠. 저는 매일 오래된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요. 5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처음 보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새로운 거니까요. 영화도, 건축도,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대만의 사원에 부쩍 관심이 생겨서, 언젠가 그 요소들을 새로운 텍스타일 패턴으로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앞으로는 자카드 직조 방식으로 패브릭을 제작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소재’라는 아직 탐구해야 할 세계가 넓게 펼쳐져 있으니까요. 지금은 유서 깊은 일본 가죽 제조사와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에게 정말 특별한 조합이 될 것 같아서 기대가 커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넘쳐흐르고, ‘옛 것’이라는 단어는 너무 쉽게 앞에 붙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아날로그를 주목해야 할까. 어쩌면 이 질문의 답변 중 하나는, 결국 오래되고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우리를 대변하는 하나의 초상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퇴적되어 자신만의 시간의 대지를 만드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JAINJAIN에게 도시는 완성된 풍경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우연히 엇갈린 테이프의 패턴, 누수를 막으려 덧바른 페인트, 유행에 따른 건축물의 형태 변화와 같은 것이 텍스타일 위로 옮겨지며 대만만의 시간의 초상화를 완성해 간다. ‘감(減)’과 ‘간(簡)’, 덜어내고 단순하게. 그 이름처럼 JAINJAIN은 도시 일상의 특징을 단순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에 있다.
자료제공 JainJain(https://www.jainjain.co/)
글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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