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전통 건축의 미래를 그리다’
2023년 한옥정책 심포지엄
‘Drawing the Future of East Asian Traditional Architecture’
2023 Hanok Policy Symposium
글: 이한샘 기자 / 자료: 서울특별시 한옥정책과 제공
동아시아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모여 지속 가능한 미래 건축으로서 전통건축의 가치와잠재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0월 6일 돈화문 국악당에서 개최된 한옥정책 심포지엄이그것. ‘동아시아 전통 건축의 미래를 그리다’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유튜브로도 실시간 생중계됐다.이번 심포지엄의 내용을 살펴보며 전통 건축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보자.
국내외 건축가, 디자이너, 한옥 전문가가 그리는
전통 건축의 현재와 미래
이번 심포지엄은 지우헌, 설화수의 집, 백인제가옥,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등 우수 디자인 한옥 투어 행사로 시작했다. 이후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온지음공방 집공방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주제 발표, 종합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에서는 한·중·일 건축가가 전통 건축의 변화와 잠재력에 대한 고민을 다뤘다.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는 ‘진화하는 삶의 형상’을, 주 페이(스튜디오주-페이 대표, 중국)는 ‘뿌리와 혁신-전통의 힘을 재발견하다’를 주제를 다뤘고,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아키텍츠 대표, 일본)는 ‘반(半)건축’에 대해 발표했다. 종합 토론에 앞서 조인숙(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이 전통 건축의 가치에 대한 5분 토크를 진행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부탄(Bhutan)의 얼굴이라고 알려진 파로 탁상(Paro Taktsang)의 사례에서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라고 해서 지방의 곳곳마다 이러한 건축물을 짓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 조 대표는 중요한 것은 장소의 역사성과 지역성이고 “새로운 것은 새롭게 지으며 앞으로 가고 옛것은 보호해야 한다”라며 전통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강조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대도시 속 전통 건축이 던지는 화두’에 관해 국내외 건축가, 디자이너, 전문가가 의견을 나눴으며, 전봉희(서울대학교 건축과 교수, 한국건축역사학회장)가 좌장으로 나섰다. 다양한 목조 건축과 전통 공간의 현대적 디자인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조남호(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대표), 노은주(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공동대표), 김대균(건축사무소 착착 스튜디오 대표)과 임태희(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구창민(샐러드보울 대표) 등이 참여했다. 토론에서는 기조 강연과 주제 발표에서 다뤄진 내용에 공감하며 전통 건축에 관한 그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건축가, 디자이너, 한옥 전문가와 함께 전통 건축의 미래를 그려 본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서는 공통적인 세 가지 주제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바로 전통 건축의 본질,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그리고 전통 건축과 자연과의 관계이다.
1. 동아시아 전통 건축의 뿌리에서 발견한 미래
한옥이라고 하면 대부분 목재 구조와 기와지붕으로 이루어진 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한옥의 본질은 무엇일까?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온지음공방 집공방장)은 전통 건축은 토속 건축(Vernacular architecture) 으로 분류되며 건축가의 창의성보다는 해당 지역의 환경이 만들어 낸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동아시아 건축의 특징은 대부분 목조 건축인 점이다. “세계적인 보편성 안에서 동아시아 건축이 하나의 건축 형식으로 자리 잡고,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 현실적인 한옥의 세계화 방안”이라는 것이다.
한편, 건축의 근원 자체를 살리는 것이 전통 건축의 본질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주 페이(스튜디오 주-페이 대표, 중국)는 건축의 다양한 근원을 강조했다. 특히 ‘해면 건축’과 불완전한 완전성이라는 개념이 흥미롭다. 그는 “구멍이 뚫려 있는 스펀지 같은 형태인 해면은 동양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건축은 빛과 바람을 받아들이며,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포용적인 건축이라는 것이다. 또한 “동양의 수묵화에는 독특한 여백의 미가 있는데, 얼핏 불완전해 보이지만 공간을 비워 두고 자연이 나머지를 채워 완전함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건축”이라고 말했다.
또한 스튜디오 주-페이가 전통 건축의 뿌리를 찾아 혁신을 이뤄낸 프로젝트 ‘징더전 황실 가마 박물관’도 소개됐다. 징더전은 예로부터 도자기를 만들어 온 도시이며, 황실 가마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가마는 일터이자 모임 장소로, 날씨가 추울 때는 가마의 열로 한기를 녹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시의 에너지를 담은 가마 형태의 매스는 바람길과 강을 고려해 배치했으며, 지역의 재료, 공간의 여백을 통해 도시와의 연결을 강조했다. 옛 건축물의 형태와 재료,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근원성을 담아낸 이 프로젝트는, 반대로 아주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2.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는 전통건축
그렇다면 대도시 속의 전통 건축은 예전과는 다른 의미와 형태를 가지고 존재해야 할까? 전통 건축은 도시 문제 중 하나인 밀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김대균(건축사무소 착착 스튜디오 대표)의 의견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통 건축을 통해 낮은 밀도에서 얻을 수 있는 도시적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노은주(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공동대표)는 전통 건축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반가와 민가에 비유했다.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반가의 가치는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하지만, 민가는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공간이므로 그 의미와 형태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은 지키되, 우리 삶의 형식이 변하며 달라지는 부분은 전통 건축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산 주택을 설계하며 500년 전 퇴계 이황이 설계한 도산 서당의 평면 계획을 빌려 왔다. 여기에 현대 건축에 많이 사용하는 경량 목구조를 사용하여, 보편적이고 가성비 좋은 공법으로 한옥의 느낌을 담아냈다고 한다. 한옥의 형태만을 빌린 것이 아니라, 공간을 여러 채로 나누고 마당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한옥의 공간도 표현한 것이다. 5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유효한 한옥의 평면 계획과 현대 건축 구조를 결합해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건축물이 탄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 또한 전통 건축을 보전해야 할 공간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한정적인 개념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조 대표는 “한옥의 본질은 겉으로 보이는 건축 양식에서 나아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삶에 있다”고 말했다. 예시로 든 익선동은 재개발로 도심 속에 낙후된 주거지였지만 한옥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는 곳이었다. 따라서 전통 한옥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한 삶을 담은 전통 건축과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한옥의 형태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우리의 수요에 의해 다시 태어난 한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의 새로운 삶에 맞춘 하이브리드 한옥은 다양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옥에는 주차 공간이 없으므로, 하부에 필로티 구조를 적용해 주차 공간, 현관 등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전통 건축과 현대식 중목구조를 결합하면 대들보 없이 심플하고 융통성 있는 현대적인 공간이 된다. 시스템 창호를 도입하기에도 수월하고 천장과 마감 사이에 여러 설비를 배치할 수 있다. 진화하는 우리 삶에 맞춰 한옥 자체를 계속 개발하고, 다른 기법과 형태로 치환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3.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게 존중받는 건축
기후 위기가 심각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현재, 친환경 건축은 모든 건축가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온지음공방 집공방장)은, 학자들이 기후 위기에 대해 경고하며 현대 문명의 붕괴를 거론하는 것은 기후 변화와 자원의 고갈만이 원인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특정 소수가 자원을 소유하고 잉여 자원 또한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건축의 목구조에 사용되는 나무는 한정된 자원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이 가능한 지속 가능한 재료이다. 노은주(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공동대표)는 자연을 향한 존중과 조화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건축의 토대이며, “우리가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면, 자연 또한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건축가는 이 명백한 공식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재료를 재활용하는 것도 전통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일본 교토에서는 매일 같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철거되고 그 잔해는 폐자재로 버려진다.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아키텍츠 대표, 일본)는 이러한 고자재의 외관에 이끌려, 철거한 건물에서 분해한 자재를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이렇게 계획된 것이 2011년 이솝 아오야마 매장이다. 올해 완성한 이솝 기치조지는 발주처에서 오래된 건물 한 채를 철거한 재료로 계획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설계했다. 이를 통해 건축주 사이에 환경에 관한 인식이 변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17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일본의 폐건물을 해체하고 배로 이동해 현지에서 재구성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존 건물에서 살던 가족의 40년간의 역사와 고자재를 함께 전시됐다. 고자재는건축가의 파빌리온으로 활용되었으며, 버려질 수 있었던 폐자재는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자연과 공존하는 전통 건축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서울 한옥 4.0 시대와 함께 만나는 전통 건축의 새로운 모습
최근 한옥은 트렌디하고 친환경적인 건축 문화 공간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중심에 있다. 서울시는 지난 22년간 한옥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지난 2월 14일에는 ‘서울 한옥 4.0 재창조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새로운 한옥, 일상 속 한옥, 글로벌 한옥’을 주제로 과거와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위한 건축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한옥정책 심포지엄’과 같은 행사를 통해 앞으로도 대도시 안의 전통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고민하고 발전해 나갈 기회가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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