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소개를 해달라.
– 나는 원래 무대 출신이다. 26살인 99년도에 <동양의 횃불 안중근>으로 연출데뷔를 했다. 이 작품으로 일본공연까지 마치고, 영화<사이렌>의 영화연출부로 들어가 활동 후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약 1년간 일을 하다가 시도한 연출이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연출만 200편 넘게 맡았고, 2007년도에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하지 않나. 뮤직비디오로 올릴 수 있는 성과를 올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영화<고사>(2008)와 <표적>(2014)을 연출했다. 다행히 두 작품의 흥행이 괜찮았고, 이번에는 영화 <계춘할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영화도 준비 중에 있다.
‘창감독’이라는 닉네임은 어떤 의미인가?
– 감독으로 데뷔하면 꼭 닉네임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있었는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할 당시 지은 것이다. 감독이란 나에게 엄청난 꿈이었기 때문이다. 창이란 글자에 내가 부여한 의미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비롯할 창(創)’으로 무언가를 창작할 때 쓰이는 것, 둘째로, ‘미쳐 날뛸 창(猖)’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셋째로, ‘몸팔계집 창(娼)’으로 창녀에 비유한 것이다. 세 번째 의미는, ‘나의 감각이 퇴색되어버리면 누가 나를 찾고, 나의 그림을 보고 싶어할까?’라는 고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의미를 잊지 말자는 이름으로 ‘창’을 쓴다고 얘기한다.
무대와 영상에 대한 이해도가 갖춰져 있다. 이승철의 <손톱이 빠져서>와 클래지콰이 <Madly>에서는 무용수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다른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영상에 움직임이 들어갈 때 다른 점은 무엇인가?
– 뮤직비디오는 춤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화된 매체라 생각한다. 언어구사에 있어 영화는 소설처럼 많은 언어 사용과 리얼리티에 많은 것들을 할애하는 편이라면, 뮤직비디오는 상당히 시적이다. 나는 무용이 몸짓으로 말하는 시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떠오를 수 있는 것이 운율과 함축성, 시적허용이라 해야 하나. 우리가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언어라 해도 시적허용이라고 한다면 무용에는 그러한 언어들이 다 있는 것 같다. 몸짓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지만 사람의 무의식 속에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데에서, 나는 흥분된다. 무용이야말로 뮤직비디오를 연출할 때에 괜찮은 매체이자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댄스뮤직비디오의 경우는 메시지를 포함한 시각적인 것에 중점을 둔다면, 무용은 좀 더 깊은 메시지를 담고자 할 때에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몸으로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화면연기와 전신으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것은 촬영방법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대부분 전신을 움직이는 훈련을 받은 무용수들과의 작업에서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아낼 수 있는가?
– 영화의 태생은 연극을 그대로 촬영하거나 어떤 현상을 그대로 찍는 것이었다. 뤼미에르 형제는 연속 촬영되는 기계를 개발하면서 기차가 오는 모습, 무대, 잠잠하던 호수에서 물이 튀어나오는 등의 현상들을 촬영하는 데에 급급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경우 클로즈업, 편집을 개발했다. 이를테면 에이젠슈타인을 보자. 불끈 쥔 주먹, 부글부글 끓는 주전자, 어떤 사람의 표정을 각각 클로즈업해서 잡아 세 컷을 붙이면 어떤 사람이 화가 나있다는 언어가 성립되는데 이게 바로 몽타주이론이다. 영화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고안된 편집술은 다른 한편으론 무용에서도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는 무용수의 작은 움직임이더라도 전체를 봐야 하지만 영상에서는 작은 움직임, 표정 같은 특정 컷만을 잡아낼 수 있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부분적으로 보여주면서 강조할 부분과 빠질 부분을 영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무용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톱이 빠져서>의 경우, 무대로 일관되기 보다 영상으로 움직임을 이해해 보려고 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그 안에 이야기를 넣어보고 사랑의 아픔을 넣어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어떻게 될지 실험해본 작품이었다. 영상에서 소재가 무용이었을 때, 무용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 연극, 영화는 각각 극장이나 화면에서 보아야 하는 진미가 있다. 각각의 특징을 살려 무용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키노드라마’가 있는데 무대와 영상의 합성으로 영상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무대에서 터지며 극이 시작된다는 등 무대와 영상간의 연관성을 맺은 작품도 있었다.
드라마뮤직비디오의 경우, 네러티브를 기반으로 무용의 추상성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혹시 춤영화를 연출할 생각은 없나?
– 신무용가 최승희를 영화로 풀어볼 계획을 갖고 있다. 최승희선생님이 부른 <이태리 정원>음악을 들으면서 그 시대에 세련된 소재와 노래를 담백하게 부를 수 있다는 데에서 감탄했다. 그 음악을 계속 듣게 되면서 그녀의 일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의 <패왕별희>와 같은 극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에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다. 최승희선생님은 그 시대에 가장 세련된 춤을 선보였던 분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스타같은 분이기도 하다. 당시 스포츠계에서는 손기정, 문화예술계에서는 최승희라고 하더라. 무용을 포함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획중에 있다.
창감독의 뮤직비디오는 단편영화에 가깝다. 뮤직비디오와 단편영화의 경계가 무엇인가.
– 경계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뮤직비디오에 메시지를 담고 영화처럼 찍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립싱크를 찍지 않으려 했다. 내가 처음 깊이 빠졌던 음악 장르가 아트락(Art Rock)이라고도 불리는 프로그래시브 락(Progressive Rock)이었다. 당시 시완레코드사가 수입을 했고 판을 구하기도 힘들었었다. 자켓 디자인은 가수 얼굴이 아닌 음악의 주제를 담고 있는 이미지였다. 옛날에는 음악자체말고 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자켓이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음악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식인 뮤직비디오가 신매체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영화는 감상자가 돈을 주고 영상매체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뮤직비디오는 마케팅의 일환이다. 마케팅의 일환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보여주느냐인데 대중의 선호도를 맞춰야 하기에 예술적이기만 할 수도 없다. 뮤직비디오는 추상적인 것, 함축성있게 가는 것 두 갈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00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표정, 많은 장면들을 한 장면으로 연출하는 것이 드라마타이즈의 생명인 것 같다. 클래지콰이의 <After Love>도 퍼포먼스를 소재로 연출했었는데 나는 감상자들에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추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조차 메시지를 담고 싶다. 때로는 충격적으로.
그렇다면 영화 OST와 뮤직비디오 음악의 경계도 헷갈린다.
– 영화OST 경우 철저하게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음악을 구성, 뮤직비디오는 대중음악을 기준으로 네러티브를 짜거난 영상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또한 뮤직비디오는 의뢰를 받고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영화는 감독이 자발적으로 기획해서 투자 받는 것이라 볼 수 있어 소프트웨어적, 하드웨어적으로 차이가 있다.
협업, 융복합이 예술계에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 프로세스가 다르기에 성공적인 협업 작품이 나오는 것도 어렵고 오히려 다른 장르에 기대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 협업에 있어서 장르 간 이해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댄스필름 매체 플랫폼을 만들려면 댄스와 영상을 충분히 이해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댄스필름의 모태를 생각한다면 근원지는 몸짓일 것이고, 이를 어떤 공식으로 담아내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나서 여러 가지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비디오 형태가 될 수도, 로케이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표현의 영역 자체를 확장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무용이라는 언어가 가져다줄 수 있는 힘은 무엇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어떤 감흥을 주는지 이해해 보고 집중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신매체를 다룰 때, 그 모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보면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론들이 보인다. 이 두 장르의 흐름파악을 병행하여 충분히 습득하고 왜 필름으로 표현되어져야 하는지 자기 스스로의 중심, 가치관이 잡혀 있어야 신매체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간예술이든, 극장이 되었든, 유튜브 채널이든 표현방식 철학들은 그 다음에 논해야 할 것이다.
무용수들은 특히 무대와 댄스 플로어가 깔린 바닥에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을 촬영하면서 현장에서 부딪혔던 부분은 없나?
– 무대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은 춤을 출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에 익숙해 있다. 때문에 흙바닥이나 카페에서 춤을 추라고 할 땐 로케이션과 춤이 100퍼센트 소화되어 나오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연기자와 같지 않나. 로케이션에 가서 연습해보고 환경에 맞는 몸짓을 생각하고 개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대와 영상에서 조명의 이해도도 조금 다른데, 영상에서는 약속되어진 것외에 라이브하거나 즉흥적인 것도 필요하다. 연극과 영화에는 대본이 있지만 연극에서 대본대로 하지 않으면 의미들이 꼬여버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에드리브로 대처가 가능한데 무용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용하시는 분들은 이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기에 꼭 안무대로 하려고 한다. 아이돌 댄스도 촬영하다보면 안무만 연습해, 안무를 응용해 단독으로 찍어 보려하면 움직임이 나오질 않는다. 무용수들은 기능인들이다. 기능인들의 확장성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체성이 많이 요구되는 장면은 무용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에서 언어를 신체언어로 대체한다면 어떨 것 같나?
– 내가 퍼포먼스를 연출하던 시절에는 대사들을 다 써보고 그 대사를 단순하게 몸으로 표현할때 희노애락으로 나타났다. 몸, 조명, 무대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게 연출인 것 같고 이에 묘한 매력이 있다. 현대무용은 클래식 무용과 다른 해석이 가능해 자유로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모든 장르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무용은 전세게 공용어로 누가 봐도 감정적 동요가 되는 장르이다. 퍼포먼스<동양의 횃불 안중근> 연출시엔 경기도 순회공연, YMCA초청으로 일본과 러시아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공연을 보며 울었다. 나에게는 관객의 관심을 끌고, 감정적으로 작품에 이입되도록 만들어야 겠다는 연출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공감 후 그들이 안중근에 대해 찾아보더라. 무용은 작품 속으로 흡입되도록 만들어주면 아주 큰 힘을 지닌 전세계적인 언어다.
무대와 영상 활동을 병행할 생각은 없나?
– 언젠가 무대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은 영화에 집중하는 타이밍이지만 어린 시절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 퍼포먼스 공연이었기에 언젠가는 무대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있다. 그때가 되면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된 연출을 해볼 수 있겠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 영화<계춘할망> 개봉 후 계속해서 영화작업이다. 그리고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내용도 채워갈 듯 보인다.
[사진제공=창감독]
양은혜 기자 culture@masilw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