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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izer.com] 영화적 우상파괴: 우리는 왜 영화 속 파괴된 건축물에 즐거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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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izer.com] 영화적 우상파괴: 우리는 왜 영화 속 파괴된 건축물에 즐거워 하는가?

Cinematic Iconoclasm: Why We Enjoy Watching Architecture Get Destroyed On-Screen
영화적 우상파괴: 우리는 왜 영화 속 파괴된 건축물에 즐거워 하는가?

이것은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말 위에 올라탄채로 사람이 없는 해변가를 거닐고 있다. 다음 순간 수평선 멀리에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곧 남자는 온 몸이 굳어가는 느낌과 함께 천천히 말에서 내리며 그 미스터리한 물체를 바라본다.

‘세상에’ 그는 말한다. ‘내가 돌아왔어. 집으로 돌아왔어.’ 충격은 이내 분노로 바뀌며 무릎을 꿇은 채 모래 위로 주먹질을 시작한다. 욕설과 함께 화면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미스터리한 물체는 시야에 들어온다. 반쯤 땅에 묻힌 부식된 자유의 여신상이다. 오직 자연풍경만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고, 모든 문명의 흔적들은 사라져 버렸다.

이 영화는 ‘혹성탈출(1968)’이다. 극중 남자 주인공은 미국 우주비행사로 머나먼 행성에 좌초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사실 유인원에 의해 인간이 노예가 된 세계였다. 갑작스런 자유의 여신상 출현은 관객들에게 줄거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주인공이 있는 곳은 다른 세계가 아닌, 수백 년이 지난 지구인 것이다. 인간의 문명은 오래 전 핵전쟁에 의해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 끝 부분에 나오는 이 조각상의 출현은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이상적인 종인 인간마저도 기대에 부응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낙천주의와 조용한 힘을 가진 이 조각상은 인간의 시대가 끝난 이후의 절망적인 상황적 배경과 어우러져 영화적 쓴맛을 보여준다.

The Mysterious Allure of the Apocalypse / 세계 종말의 신기한 매력

영화는 세계종말 시나리오의 극적 효과를 위해 극중에서 유명 건축물을 파괴시키는 일반적인 종말론적 영화와는 다르다. 사실 유명한 랜드마크 건물이나 도시전체의 파괴는 미국영화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풍자 중 하나이다. 흔히 재난 영화라고 불리는 것들은 1930년 대부터 헐리우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90년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이후에도 지금까지 그 트렌드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 영화 제작자와 관객들이 좋아하는 유명 건축물, 교량, 조각상 등을 파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an Francisco’s Golden Gate Bridge is a symbol of hope and ingenuity: An extraordinary feat of engineering realized in the midst of the Great Depression. Here it is being attacked by an octopus monster in the 1955 film “It Came From Beneath the Sea.” Via NME.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축약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공포를 보는 것으로 안락함을 느낀다.’
프로이트는 1922년 자신의 저서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을 집필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정신적 외상 환자들은 자신의 정신적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종종 자신의 트라우마를 되뇌이곤 한다. 심각할 경우, 실제로 그 심각한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다. 프로이트는 이 현상을 ‘반복 강박’ 이라 정의했다.

When The White House is destroyed in films — as it is here, in Roland Emmerich’s “Independence Day” (1996) — it provokes an unsettling feeling of national instability. Via NME.

비슷한 이론은 공포 영화의 인기를 설명한다. 만약 누군가의 공포가 화면에 투영되었다면 심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어두운 골목을 배회할 때의 공포심보다 덜 강력할 것이다. 노출치료에서도 마찬가지로, 공포영화의 관객들은 종종 입장할 때보다는 덜 무섭게 영화관을 나올 것이다.

New York’s Grand Central Terminal is pounded with meteors in Michael Bay’s “Armageddon” (1998). It still seems more pleasant than Penn Station. Via NME.

The Visceral and the Abstract / 본능과 추상

공포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최악의 공포를 경험하게 하지만, 반이상향적 영화는 추상적 공포 혹은 정치나 먼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 등을 경험하게 한다. 만약 누군가가 부의 불평등에 대해 불안함을 느낀다면 불평등이 논리적 결과로 귀결된 세계상을 묘사하는 최신 영화 ‘헝거 게임’을 시청해 보는 것은 어떤가? 반이상향적 영화는 종종 날카로운 사회적 비판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의 인기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The Millennium Bridge in London takes a beating in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2009). Via NME.

대중들이 이러한 영화에서 흥미를 발견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간들은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영화들은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불안감을 없애주기도 한다. 영화의 마법 같은 치료를 통하여 실제 위험들은 환상적인 분위기로 돌변한다.

The Sphinx gets a facelift in “Team America: World Police” (2004), a film that spoofed the tendency of Hollywood action movies to depict famous landmarks getting blown to smithereens. Via NME.

유명 건축물 파괴 장면은 공포영화와 반이상향적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이것은 마치 전형적인 재난영화에 의해 축약된 혼합체와 유사하다. 한편으로는 파괴된 익숙한 건물을 보는 것은 친숙하기도 하지만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다.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들을 방문했다.

The Eiffel Tower takes a bow in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 Via NME.

다른 한편으로, 무너진 유명 건축물을 볼 때마다 작용하는 은유적 요소들이 있다. 백악관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건축물들은 확립된 단체나 이상향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건물들의 영화 속 파괴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문명은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Even in a film as silly as “Sharknado 2: The Second One” (2014), the destruction of a monument is an unsettling — if also exciting — thing to watch. It reminds us of the fragility of our entire society. Via WordPress.

재난 영화의 힘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재난영화는 단순히 혼란스러운 파괴의 연속을 묘사할 뿐 아니라, 사회 질서의 혼란까지다 묘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기념될 만한 것들의 파괴를 지켜보는 것은 세계종말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Godzilla” was the most popular film franchise in mid-century Japan, a nation that had recently suffered the trauma of seeing two of its cities destroyed in nuclear attacks. This was not a coincidence. Still from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1956) Via Complex.

Architecture as Political Symbol / 정치적 상징으로서 건축물

‘혹성탈출’과 같은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에서, 유명 건축물의 파괴와 종말론적 효과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서 극적인 효과를 전달할 수 있다. 극중 배우가 땅바닥에 주먹을 휘두르며 비관적인 소리를 지를 때, 인류의 궁극적인 파괴에 대한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e final scene of “Planet of the Apes” (1968) finds Charlton Heston in agony as he contemplates the tragic destiny of humankind. Via SquidNova.

오늘날 이 장면을 우리가 볼 때, 우리는 기후변화나 다른 위협요소들을 생각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 자유의 여신상이 가진 고귀한 자태는 인류의 모든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들도 나타내어 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이러한 이상향에 부응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다른 논쟁거리지만, 주인공의 울부짖음은 인류문명의 멸망이 비극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단순히 관객들에게 싸구려 흥분을 선사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라면 세상이 보존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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