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진양상가] 그 곳 그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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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나는 여기서 30년 동안 자부심 하나 가지고 일했어. 지금도 그렇고.”
“요즘 사람들은 끈기가 없는 것 같아. 평생 직업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잖아.”
“세상 흐름이 그렇잖아. 젊은 사람들이 취직하는데 바빠서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이게 다 손으로 하는 거라 정성이 더 보이지.”
“여기가 계절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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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곳곳에 놓인 꽃들을 보면 꽃을 놓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표정과 마음으로 꽃을 사왔을지 상상해보는 일은 꽃을 보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계절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곳, 그 계절을 온전히 살 수 있는 곳에서의 일상은 어떠할까? 아침 7시가 되자 사람들은 분주히 자신의 하루를 준비한다. 20년 전에도 그러했듯 앞마당을 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 한 주인아주머니께서 진열대에 나와 꽃을 매만지고 계셨다.

1_30년 꽃길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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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A 일한 지는 한 30년 됐어. 여기 꽃시장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하는 거야. 원래 여기가 백화점이었는데 꽃시장으로 바뀐 거거든.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분양할 때 같이 받아서 다 들어온 거야. 1, 2년 안에 다 들어온 거지.

Q 가게를 열면 어떤 일부터 시작하세요?
A 손님 맞아야 하니까 꽃 종류별로 갖춰놓고 진열해놓고 하지. 보통 8시에 시작해. 아침에 포장해서 배송해야 하는 일도 많고, 오전에는 바빠. 저기 아저씨들 보여? 저분들 대부분은 운송해주시는 분들이야. 오전에는 이 상가 전체가 바쁘다고 보면 돼.

Q 앞의 전자상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A 아무래도 오픈 상가니까 그렇지 않을까? 앞 건물들은 다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 그러다 보니 더 친해지고, 먹을 것도 나눠 먹고 그러는 거지. 30년 동안 심심한 적이 없었어.

Q 가게마다 있는 꽃이 달라요. 가게마다 취급하는 꽃 품목이 있나요?
A 그렇지. 꽃만 있는 데도 있고, 종목은 같이하는데 취급하는 업종이 다르니까 생화를 하는 데도 있고 서양 난, 동양 난, 관엽 식물 위주로 하는 등 다 달라. 근데 다 같이 한다고 보면 돼.

Q 같이 해서 좋은 점이 있으세요?
A 같이 하면 여러 종목을 취급하니까 구색이 맞춰지잖아. 다른 데보다는 규모도 그렇고, 여기는 크니까 다 있잖아. 상가 사람들 이랑도 서로 다 친해서 편하지. 집에 있는 시간보다 여기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Q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가게 홍보는 어떻게 하세요?
A 홍보는 광고물로 하는데, 이젠 오래돼서 인맥으로 소개해서 많이 들어와. 30년이 다 됐으니 손님들도 다 단골이 돼서 소개해주고 그래. 여기는 직접 사가는 손님들은 많이 없고 전화상으로 많이 판매해. 화원이나, 결혼, 삼단 등등 규모 큰 건 다 해.

Q 꽃은 어디에서 가지고 오세요?
A 우리는 경매를 봐요. 월요일, 수요일에 농협에서 하는 경매가 있어서 도매해서 와. 들고 오는 것부터 관리하고 손님한테 배달하는 것까지 우리가 다 하니까 항상 바빠. 꽃이라는 게 계절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야. 행사가 많은 5월 같은 경우가 제일 바빠. 그리고 결혼시즌 10월부터도 바쁘고. 구정에는 좀 덜하다가 6월 현충일 지나서 8월까지는 좀 한가해.

Q 처음부터 꽃시장이 들어선 건물이 아니어서 계단도 많고 공간도 길어서 많이 불편하실 거 같아요.
A 맞아. 처음에 우리는 데크가 있어서 여기에 분양을 받은 건데 데크를 없애버린다고 하지를 않나. 또 재생사업 하면서 데크 부분만 서울시 관할로 바뀌어서 주차비만 2배로 올랐어. 그러니까 여기 있는 상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거야. 우리는 여기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으니까 주차가 우선인데 주차권을 그렇게 가져가 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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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머니는 무슨 꽃 가장 좋아하세요? 옛날부터 좋아하셨어요?
A 꽃 안 좋아하는 사람 없잖아. 다 좋아하지. (호호)

Q 부산같이 먼 지역은 어떻게 배달 가나요?
A 여기서 우리 가게가 제일 크거든. 우리가 인터넷 가맹점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많이 찾지. 서울에서 내려 보내면 거기서 보내지. 부산같이 먼 곳도 다 가고, 여기 주변에 가까운 곳은 걸어서도 배달해.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잘 사용하니까 젊은 층도 많아졌어.

Q 30년 동안 일하시면서 가장 장사가 잘됐던 때는 언제에요?
A 88년도 노태우 때가 제일 좋았어. 그땐 경기가 다 좋아서 서민들이 살기가 좋았어. 결혼식이 많았고 또 수입이 없고 국내에서만 팔았어. 근데 요즘은 너무 힘들어. 꽃을 못 쓰게 하잖아. 김영란 법 만들어져서 꽃을 얼마 선에서 쓰라 그러고 또 정치인들이 꽃 안 받는다고 그래서 우리가 힘들지. 포도주 같은 건 다 받으면서 꽃은 못 받게 하니까 농민들만 힘들어지는 거지. 꽃 얼마 돼지도 않은데 꽃 하나 팔면 여러 사람이 먹고사는 거잖아. 농민, 운송, 비료 하는 사람들이 다 먹고살 수 있는데, 수요가 없으니까 꽃값만 올라가잖아, 수입해오고 그러니까. 꽃을 주문해서 배송시켜도 그냥 되돌려 보내버려. 우리는 되돌아오면 다 시들어버려서 다시 팔수도 없는데 되돌아오면 운송비 못 받지, 우리는 상품 시들지, 힘들어.

Q 일반 상가 꽃집이 아닌 진양상가에서 30년 동안 유지해 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경기가 어려워졌을 때 다른 데로 가 볼까 생각도 했었지. 근데 나는 도매 식으로 하니까 밖에서 하기가 더 힘들겠더라고. 여기는 전국적으로 팔기 때문에 배송도 편하게 할 수 있는데, 밖에서 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들어가. 요즘에 길 지나다 보면 작은 꽃다발 만들어서 파는 젊은 사람들 많잖아. 그런 것도 생각했는데, 여기는 방문해서 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주문량으로 큼지막하게 만드는 거야.

Q 저희가 마무리하는 공통질문인데요(웃음) 이모님한테 있어서 꽃시장이란?
A 내 평생직장이지. 난 자부심 느끼고 일해!

Q 저 옆쪽에 붓글씨만 써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A 옛날에는 컴퓨터 출력이 안 됐으니까 직접 글씨를 썼어. 옛날에는 저기가 4구역이었는데 구역마다 붓글씨 써주는 분들이 있었었지.

30년 동안 일하신 꽃길 아주머니의 인터뷰를 끝낸 후, 붓글씨 쓰시는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종종 보는 화환에 적힌 문구가 쓴다고 하신다. 요즘은 컴퓨터로 빠르게 출력 하지만 예전에는 먹을 직접 갈아 붓글씨를 썼다고 한다.

2_붓글씨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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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환에 적힌 글씨를 쓰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A 밖에서 하다가 여기서 필요로 해서 들어오게 됐어. 한 10년 됐지. 젊었을 때부터 글씨를 썼는데, 오로지 서예만 한 건 아니야. 원래 업은 공무원이었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서예를 취미로 하다가 퇴직하고 제대로 시작했지.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취미 활동하는 것은 좋은데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그래.

Q 옛날엔 상가에 붓글씨 쓰는 곳이 더 많았다고 들었어요.
A 예전엔 구역마다 붓글씨 쓰는 사람이 있었어. 주말에도 당번을 정해놓고 나올 정도로 그땐 주문량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다 망했어. 그런데 특별한 사람한테 선물을 보내거나 할 때엔 프린터보다 붓글씨가 정성이 보이니까 아직도 찾는 사람은 많아.

Q 청봉이 혹시 호인가요? 그럼 특허겠네요?
A 그렇지. 옛날에는 내 글씨가 인기가 많았었어. 근데 20년 전에 써진 거라 지금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그래도 전국에 내 팬들이 많아서 기억하시는 분들은 나한테 의뢰를 맡기곤 해.

Q 주문은 어떻게 들어오나요?
A 상가 사람들도 필요할 때 와서 맡기기도 하고, 대부분 팩스로 주문이 들어오면 내가 써서 택배로 보내 주기도 하고, 손님이 직접 가지러 오기도 하지.

Q 컴퓨터가 발달되면서 프린터로 금방 뽑아낼 수 있을 텐데 의뢰가 많이 들어오나요?
A 그렇지. 근데 역설적으로 그게 없었으면 내가 있지 못했을 거야.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거든. 뽑은 것보다 이것이 더 자연스럽고 좋잖아. 컴퓨터로 뽑으면 죽은 글씨체지. 사람이 직접 쓰니까 생명력 있는 글씨라고 아직은 찾는 사람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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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랫동안 글씨를 써오셨는데 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A 하면 좋지. 근데 가르쳐보니까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 순수한 예술을 위해 하면 좋은데 좀 잘한다 싶으면 욕심이 생겨서 공모전에 나가려고 해. 그러면 또 다른 각도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하므로 난 지금이 좋아.

Q 옛날에 비하면 붓글씨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죠?
A 그럼 세상 흐름이 그렇잖아. 모든 사업이 그래 조선사업도 그렇고 꽃 사업도 그렇고 붓글씨도 젊은 사람들이 취직하는데 바빠서 배우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Q 저희 기억에도 초등학생 이후에는 서예시간이 없어졌어요.
A 맞아 문제야. 역사도 그렇고 한자도 안 가르치고 문제가 많아. 동남아가 한자권인데 학생들이 논문을 쓰고 토의를 하면 뒤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아. 서예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 정신건강하고 연관돼. 심호흡도 달라진다니까.

옛날에도 학생들처럼 뭐 물어본다고 왔었는데, 순수한 목적으로 글씨를 하나 써줬어. 다시 온다더니 소식도 없네. (허허)

붓글씨 선생님의 인터뷰를 마친 후 꽃을 구경하던 중에 가까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나도 좀 찍어봐~!”

3_리본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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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기서 일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A 20년 정도? 내가 여기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어. 요 옆에 꽃길난원이라고 거기도 오래되었지. 거기 사장님이 나랑 이름이 같아. 김미자라고.

Q 그럼 20년 동안 이 자리에서 일하신거에요?
A 20년 동안 이 자리에서만 일했지. 저기 한 개 더 늘렸어. 오랫동안 해오니까 상가사람들이랑 다 친해.

Q 가게 열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뭐에요?
A 아침 7시에 와서 마당부터 쓸고 밥을 먼저 먹어. 밥은 집에서 싸오지.

Q 리본을 많이 만드시는데 가게 이름은 ‘명동 화원’이에요, 이유가 있나요?
A 처음에는 화원으로 시작했었어. 원래 꽃도 했었는데 화원을 하다가 내가 리본 만드는 재주가 좋다고 리본 장사하라고 사람들이 막 그래서 시작하다 보니까 바뀌었어. 부업이 본업이 된거지. 이제 주업은 리본장사고, 카드도 하고 화환도 하고 구멍가게 식이지.

Q 리본 사시는 분들은 주로 누구에요?
A 이 옆 가게들한테 파는 거야. 예쁘고 중요하다 싶은 분들은 사가. 비싸서 옆 가게들은 못 샀었어. 여기에서 사는 분들도 있고 외부에서 주문하는 경우도 있어. 조금 전에도 적어놨는데 850개 아까 가져갔어.

아저씨와 수다를 떨고 계셨다.

Q 두 분이 아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에요?
A 아저씨-20년이야 20년 뭔 일이 있을만한 시간인데 아직도 없잖아

Q 자주 같이 수다 떠시나 봐요?
A 아저씨-자주 오는데 마음을 안 줘
아주머니-저렇게 웃겨~
아저씨-언니들이 말 좀 잘해줘 그래도 있을 때 잘해주라고 나는 그냥 간다~

Q 하루에 리본은 얼마나 만드세요?
A 다 손으로 하는 거라 많이는 못 만들어. 그런데 이게 지금 접고 있는 리본 하나만 만드는 게 아니고, 부수적인 작은 리본들도 다 만들어 놓고 이래야 해서 쉴 새가 없어. 이것저것 만들어.

Q 계속 같은 작업하면 지루하지 않으세요?
A 지루하진 않아 왜냐면 이게 다 돈이거든(웃음). 지루할 때도 있지만 빨리 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은 잘 안 들어. 요즘 사람들도 끈기가 있어야 돼. 요즘 사람들은 끈기도 없고 참을성도 없고 그런 것 같아.

Q 재료가 굉장히 많아요. 재료는 어디서 사오세요?
A 재료 도매상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 사와. 직접 가서 보고 골라서 오는 거야. 저런 대는 화한 만들 때 꽃가지로 쓰고, 큰 리본은 글씨 쓸 때 써. 사람들이 필요한 거 사갈 때 종류마다 필요한 게 다르니까. 삼단리본은 양란에 쓰고, 이렇게 리본이 길게 늘어진 것은 화분이랑 꽃바구니, 큰 리본들은 삼단, 꽃 종류에 따라 리본이 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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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리본이 정말 다양해요 디자인은 직접 다 하신 거에요?
A 그럼~ 내가 다 연구한 거야. 다 창작이야 창작. 리본 이런 거 마땅한 게 나오면 머리에 스치지 이런 걸 해야겠다. 재료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리본 생긴 거에 따라 다 다르게 하는 거야.

Q 한창 인터뷰를 하던 중에 옆 상가 사장님이 리본 사러 오셨다.
A “머리리본이 하나도 없네? 요거 난에 달면 되는데 이거면 되겠지? 이거 줘봐.”

Q 꽃 시장이라 계절도 많이 타고 그럴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여기가 계절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야.

Q 보통 한가하실 때엔 뭐하세요?
A 나? 한가할 때가 없어. 뭐 잠깐 심심하면 tv를 보지. tv가 내 친구야. 내가 젊을 땐 어르신들이 왜 저렇게 다큐멘터리를 보는지 몰랐었는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그걸 보고 있더라고.

Q 등산사진이 많아요, 취미가 등산인가봐요.
A 취미야 취미. 내 뒤에 있는 사진들은 다 사진하는 분이 찍어주셨어. 같은 등산모임 사람인데 사진하시는 분이야. 저번에 여럿이서 전시회도 하고 실력이 좋으셔.

Q 이렇게 리본도 직접 손으로 만들고 붓글씨도 맡기면 다른 데에서 파는 거랑은 많이 다르겠죠?
A 그래도 확실히 리본도 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글씨도 붓글씨 맡기면 정성이 느껴지니까 선물 받는 사람이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붓글씨가 비싸서 프린터를 많이 쓰긴 해. 프린터가 생기고 나서 예전보다 일하기가 수월해졌지. 일요일엔 붓글씨 선생님들이 쉬는 날이라. 일요일에 일이 들어오면 못했었는데 요즘엔 프린터로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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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날 때 쯤 다른 가게의 아주머니가 리본을 사러오셨다. “강원도 잘 다녀왔어? 감자 가져왔어 감자? 옥수수라도 가져오지 그랬어~”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자연스럽게 가게에 모여 앉아 즐거운 수다가 벌어졌다. 그러자 앞 가게의 아주머니가 참외를 들고 와 우리에게도 참외 한 조각씩을 건내주었다. 우리는 참외를 다 먹고 나서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드리고 진양상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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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30년 동안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에게 있어 직업은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다. 그들에게 직업은 때로는 힘든 기억이기도 하겠지만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버텨낸 세월이 더 많았을 것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는 자부심과 젊은 날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하루, 한 계절을 온전히 경험하며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진양상가의 사람들을 보면서 멋있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도 그들의 모습이 이곳에 간직되었으면 한다.

SERIES INTRO

그 곳 그 사람들 이야기 도시는 경제 발전과 함께 계속된 확장을 거듭한다. 동시에 내부에선 기존 도시 인프라와 건축물들이 거대해지는 도시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철거와 수선을 반복한다. 급속도로 성장한 서울은 그만큼 도시 곳곳에서 빠르게 철거와 수선이 반복되어 왔고, 반복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많은 기억과 공간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래된 공간들은 막연히 철거하고 멋진 건물을 새롭게 짓는 것이 도시를 멋지게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사라져 가는 공간을 기억함은 물론이고, 그 곳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낡고 오래된 것들이 새롭게 반짝거리는 것들보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계속 변화하는 도시 속,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곳이 오래된 다방이 될 수도 있고, 누구네 작은 가게가 될 수 도 있고, 길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가 될 수도 있다. 크고 화려한 장소는 아니지만 사람들 기억이 켜켜이 쌓이는 그것 자체로 그 곳은 충분히 가치 있다. 그 곳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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